한국일보

[뉴스칼럼] 폭우 속의 절수령

2023-01-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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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캘리포니아에는 유난히 많은 비와 눈이 왔다. 남가주를 모르면 “LA에 무슨 눈?” 할 지 모르나 지금 LA근교 산들은 흰 눈을 이고 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남가주는 그나마 심한 폭우 피해는 비껴갔으나 북가주와 중가주 일부 지역에는 한동안 겨울 홍수 소식이 이어졌다. 비 소식이 이제 그치나 했더니 이번 일요일께 다시 비가 예보되는 곳도 있다.

이런 때 새로운 절수 규정을 주민들에게 공지하는 시도 있다. 친절하게 한국어 번역이 첨부되기도 한다. 지금 같은 때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겨울 비 속에 내려지고 있는 절수령을 이해하려면 물의 순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구의 물 보관 창고는 하늘, 지상, 지하 3곳에 나눠져 있다. 담수는 이 3개 층에 두루 분포돼 있다. 지구로 순환되는 담수의 20%이상은 대기권, 공중에 떠 있다. 하늘에 강을 이뤄 흐르고 있다. 이번 겨울 뉴스에 자주 나왔던 대기권 강(atmospheric river)이 곧 그것이다. 말만 들으면 언뜻 시적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폭우를 쏟아내는 수증기 기둥이 형성되면 수량이 미시시피 강 하구를 흐르는 물 보다 많아진다. 한꺼번에 쏟아지면 댐도 무너뜨릴 수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태풍처럼 대기의 강도 등급을 매기는데, 최상급인 5가 되면 위력이 이 정도가 된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물난리의 80% 이상은 이 강이 원인, 잠깐 사이에 수 천회의 번개가 잇달아 내려 꽂힌 현상도 이 강 때문에 벌어졌다.

이런 대기의 강이 피해가는 곳은 반대로 가뭄이 극심하다. 하늘의 강은 캘리포니아 가뭄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대기권 강의 영향은 보통 북가주는 3년에 한 번, 남가주에는 10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번 겨울 태평양에서 캘리포니아로 길게 이어진 하늘의 강은 모처럼 수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빗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늘이 물을 내보내자 땅이 심각해졌다.

물 폭탄이 터지면 캘리포니아에서 물을 받아 두는 곳은 크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스노우 팩, 곳곳의 저수지와 호수, 지하 등 3곳이다. LA 식수원 중 하나인 콜로라도 강도 로키 산맥의 눈 녹은 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스노우 팩이 물 탱크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가뭄 후 처음 내리는 비는 도로 등 땅 위의 오염 물질을 쓸어 가기 때문에 식수로 적합하지 않다. 그 다음 빗물부터는 보관해야 할 식수원. 모아두고 싶은데 빗물은 흘러 흘러 하수구나 강을 거쳐 바다로 가고 만다. 건조한 봄과 여름 폭염에 대비해 더 많은 빗물을 저축해 둘 방법은 없을까. 빗물을 담아 둘 수 있는 용기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눈길을 끄는 치수 프로젝트의 하나는 빗물을 지하수로 보존하는 것. 빈 들이나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땅을 잠시 저수조로 활용해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서서히 지하로 스며들게 하자는 것이다. 빗물을 바로 바다로 흘려보내는 대신 땅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다.

현재 이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샌호세 남서쪽 샌타 크루즈 카운티의 파하로 밸리. 평소 물의 95%를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농장지대다. 이 사업을 위해서는 농부인 땅 소유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저수조의 토양에 따라 비 온 후 수 일, 혹은 수 주동안 땅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재배하는 농작물에 따라 수해를 입는 곳이 생기게 된다.

대신 저수조로 활용될 땅을 제공하는 농장주에게는 물 사용료를 되돌려주겠다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저수조에 보관했다가 지하로 스며든 물의 양에 비례해 리베이트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근처에 강이 흐르는 농업지대에서는 유용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캘리포니아 주 전체로는 이 같은 저수조 340여 개를 조성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뜻대로 모두 이뤄지면 50만 에이커 푸트, 풋볼 구장 50만개에 1푸트, 30센티 깊이의 물을 일시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비가 이번 시즌 캘리포니아의 마지막 비였다면 한 달내 똑 같은 물걱정이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폭우 속에서도 절수령이 내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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