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소지,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지난 2013년 2월에 기자가 썼던 본보 데스크 칼럼의 제목이다.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당시 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 사건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수도 없이 죽고 다치는 속에서도 총기규제 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미국의 현실을 개탄했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지금 상황이 그리 달라진 것은 없다. ‘아시안 증오’ 이슈가 증폭되는 기점이 된 2년여 전 애틀랜타 총기난사 사건 이후 언제 어디서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지 모를 총기난사에 대한 체감 공포는 오히려 더 커진 상황이다.
최근 며칠 새 연달아 터진 총기난사 사건들이 우리에게 등골이 서늘한 작금 미국의 현실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지난 주말 발생한 몬트레이팍 댄스홀 총기난사와 북가주 해프문 베이 연쇄 총격, 그리고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야키마에서 일어난 편의점 묻지마 총격까지 불과 나흘 사이에 3건의 총기 참극으로 20여 명이 희생됐다.
특히 야키마 편의점 총격은 21세 남성이 새벽 3시에 서클K 편의점에 들어가 고객 2명에게 다짜고짜 총격을 가한 뒤 다시 업소 앞에 세워져 있는 차에 탄 1명까지 쏴 모두 숨지게 하는 무차별 총격인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총질을 해댄 것인데, 밤중에 뭔가 먹을 것을 사려 편의점에 들렀다가 졸지에 총격을 당한 희생자들이 나와 내 가족, 주변 친지들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정말 오싹하다. 누구나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총기난사로 부르는 ‘매스 슈팅(mass shooting)‘은 가해자를 제외한 사상자가 4명 이상 나온 총기 사건을 지칭하는데, 비영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GVA)‘가 집계한 현황표를 찾아보니 올해들어 채 한 달도 안 된 25일 현재까지 미 전국에서 발생한 매스 슈팅 사건이 무려 40건에 달하며 이로 인한 사망자는 총 73명, 부상자는 162명이나됐다.
그런데 이건 사상자가 4명 이상인 총격만을 카운트한 것이고, 모든 총기 관련 사건사고들로 확대해서 보면 2023년 새해 들어 25일 현재까지 25일 간 전국에서 2,928명이 사망한 것으로 GVA는 집계했다. 이중 약 43%인 1,278명이 총기난사 및 총격 살인, 총기 사고의 희생자들이고, 나머지 1,650명은 총기 자살로 인한 사망자들이라고 한다.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하루 평균 117명이 총기에 목숨을 잃고 있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현실은 바로 총기가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사람보다 총이 더 많은 나라다. 민간에 풀린 총기의 개수는 현재 3억9,300만 정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2022년 기준 미국 인구 3억3,300만 명보다 1.2배가 많다.
이런 상황은 미국 총기 산업의 호황과도 연결돼 있다. 최근 AFP통신이 인용한 연방 법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총기 산업은 최근 20년 사이 더욱 급격하게 성장, 지난 2000년 2,200여 개였던 총기 제조업체의 수가 2020년는 1만7,000여 개로 8배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총기 제조사들은 2020년 한 해에만 1,130만 자루의 총기를 생산하는 등 지난 20년 간 약 1억3,900만 정의 총기를 상업용으로 생산해 판매했다고 한다. 총기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총기로 목숨을 잃는 이들도 25년 만에 최고치로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지금 당장 미국에서 총기의 판매가 전면 금지된다 하더라도 이미 인구수보다 많은 총이 존재하고 누구나 쉽게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현실에서 무고한 희생을 내는 총기 사건들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은 절망적이다. 또 총기 참극이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에도 실제로 관련 법안들이 연방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냉소도 퍼져 있다. 현재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연방 정치권의 구도 때문이다.
그러나 무언가는 해야 한다. 절망과 냉소에만 빠져 있기엔 무고한 희생들이 너무 많다. 비극의 반복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연방의회에서는 1994년 대용량 탄창을 장전할 수 있는 돌격소총 공격용 무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전례가 있다. 이후 총기난사로 인한 사망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10년 간 한시적 시행이라는 조건을 달았던 이 법은 2004년 연장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복원하자는 법안이 현재 연방 상원에 발의돼 있다. 이처럼 총기규제 강화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돼야 한다.
총기 참극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10년 뒤 또 다시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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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편집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