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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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문화

2023-01-19 (목)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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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는 발효문화이다. 밥도 쌀이 익었다고 퍼 먹지 않는다. 뜸을 들여야한다. 김치도 담그고 오래 기다린다. 간장 고추장 된장 막걸리 감주 등 모두 담근 뒤 한참 동안 기다려 먹는다.

한국문화는 기다림의 문화이다. 고전인 춘향전, 심청전 등은 모두 참고 기다리는 이야기들이다. 뜸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맨해튼에서 목회할 때 점심 먹으러 자주 가던 중국집이 있다. 그 주인이 “한국 사람은 음식을 빨리 먹는다”고 하였다. 내가 웃으며 “전쟁을 겪으며 그런 습관이 되었다”고 적당히 대답하였지만 먹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은 천천히 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원님(현재의 도지사격)의 호위대장으로 호걸이었다. 건너 마을에서 술 한 잔 하고 작은 산언덕을 넘어오는데 호랑이가 뒤따랐다. 무섭지만 호랑이 앞에서 달리면 죽는 것과 같다고 하니까 할아버지는 천천히 걸으며 호랑이에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너는 산 중의 왕이지만 나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힘이 센 호걸이다. 싸울테면 싸워보자” 호랑이는 배가 고프지 않았던지 끝내 공격하지 않고 따라만 오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할머니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남자는 아무리 급한 때라도 참고 기다릴 줄을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참는 인내,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 조바심을 내는 것은 한국인답지 않다. 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회사에서도 성공하고 가정생활도 원만하다.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지긋이 들으며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자기의 말을 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하는 것은 좋은 대화법이 아니다.

발효문화는 뜸을 들이는 문화이다. 좀 더 느긋해져야한다. 태도가 어쩐지 바빠 보이는 사람, 밤낮 시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은 넉넉한데 마음이 급한 것이다. 시간에 끌려 살지 말고 자기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남의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이다.

나는 투석(dialysis) 환자이다. 신장의 기능을 잃어 피를 기계에 넣어 청소하는 작업을 이틀에 한 번씩 네 시간 동안 받아야한다. 이미 8년 동안 매주 세 번씩 병원에 가서 이런 작업을 한다. 이 치료는 몹시 지루하기 때문에 인내의 싸움이다. 나와 함께 치료받는 환자 한 사람이 “이런 병을 앓다니 우리는 저주를 받은 거예요”하고 말했다.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하는 신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런 병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으로 알고 끈질기게 병원에 가서 전쟁을 치르고 온다.

누구나 고통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한다. 인생 고해라고 옛부터 말한다. 건강상의 고통, 직업의 고통,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 민족적인 고통, 가정의 고통 등 괴로움을 겪다가 죽는 것이지만 고통과 싸우며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다. 고통이 없는 이상향을 천국이라 혹은 극락이라고 모든 종교가 말한다.

기어다니는 아이 앞에 장애물을 놓는다. 장애물에 대하여 아이의 태도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장애물을 보자 전진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아이, 둘째는 장애물을 돌아서 가는 아이, 셋째는 장애물을 밀어 젖히고 전진하는 아이다. 셋째가 긍정적 인생관, 첫째가 부정적 인생관, 둘째는 적응적 인생관이다. 상황에 적응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지만 문제에 부딪쳐 해결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이런 인생관을 전투적 인생관이라고도 말한다. 이 싸움에 이기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한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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