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내로남불’ 깨려면 ‘할발대수’ 모범 보여라
2023-01-19 (목)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
‘난세의 영웅’ 조조가 198년 군사를 이끌고 장수를 공격하러 나섰다. 백성의 밀밭을 함부로 밟으면 참수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조조가 탄 말이 밀밭 가운데로 뛰어들어 짓밟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책사 곽가는 “법은 지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조조는 고심 끝에 “그럼 내가 나의 머리털을 베어 참수를 대신하리라(割髮代首·할발대수)”고 말했다. 조조는 머리카락을 자른 뒤 이를 군인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 뒤 군령을 어기는 장병은 없었다.
할발대수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유사하다. 로마가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16년 동안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렀을 때 최고지도자인 콘술만 13명이 전사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무대를 옮기면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표리부동과 이중 잣대 행태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정 과제에 대해 “첫째 경제, 둘째 안보, 셋째 통합”이라고 답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소득주도성장과 포퓰리즘 정책으로 잠재성장률이 추락했고 나랏빚은 급증했다. 대북 평화 타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안보 불안만 초래했을 뿐이다. 편 가르기 정책은 국론 분열을 증폭시켰다. 늘 평등·공정·정의를 외쳤지만 공정을 무너뜨린 ‘조국 사태’가 터졌는데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4·7 재보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소식을 전하면서 ‘내로남불’을 이유로 꼽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패배 원인도 이중적 태도와 대장동 개발 의혹 등 ‘사법 리스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2일 검찰이 성남 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자신에게 소환 조사를 통보한 데 대해 “가장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정권”이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로 반발했다. 거대 야당으로 변신한 민주당은 서민을 더 힘들게 만든 문 정부의 실패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윤석열 정부 발목 잡기에 주력해왔다. 반도체특별법 등의 통과를 가로막았고 뒤늦게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이제는 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 나라 정상화를 위한 개혁에 나서야할 때다. 윤 대통령은 “개혁이 인기가 없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추진 의지를 밝혔다.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심한 데다 국정운영 지지율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는 윤 대통령은 외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지율의 역설’이다.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정교하게 로드맵을 만들고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불굴의 뚝심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한다. 국민의 공감을 유도하고 야당의 반대를 약화시키려면 대통령과 여권 핵심 인사들부터 도덕적 우위로 무장해야한다.
그러나 여권의 풍경을 보면 개혁 동력을 떨어뜨리는 행태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2개월여 앞두고 대표 경선 룰을 ‘당원투표 100%’로 바꾸는 방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역선택’으로 대통령과 충돌하는 대표를 뽑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민심과 무관하게 ‘윤심’만 추종하는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은 상식의 정치에 위배된다.
또 말실수나 인사 실패 등에 대해선 곧바로 오류를 시인하고 사과하는 게 바람직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로 잘못 읽었다는 지적을 받자 며칠 뒤 ‘5G’를 굳이 ‘오지’라고 읽는 고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자신의 실언에 대해 곧바로 사과나 유감을 표명해야한다. 국민을 등 돌리게 하는 건 실수가 아니라 아집과 독선이다. 내각·대통령실 개편 과정에서도 실력뿐 아니라 도덕성을 갖춘 인사들을 기용해야한다. 보수의 문제는 부패와 ‘웰빙’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혁의 칼을 들고 거대 야당의 내로남불을 청산하려면 할발대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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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