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더 페이블맨스’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더 페이블맨스’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더 페이블맨스’의 한장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제작과 공동 각본 겸)한 ‘더 페이블맨스’(The Fabelmans)는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부터 영화계에 입문하기까지의 삶을 그린 그의 반 자전적 영화로 소년의 성장기이자 영화라는 마법이 한 인간을 어떻게 형성하고 또 변화시키는가 하는 얘기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린 재미있는 영화다. 스필버그는 이 같은 자기 성장의 얘기만큼이나 큰 비중을 두고 자기 가족(특히 부모) 얘기를 자상하게 다루고 있는데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서술하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토론토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여 영화제 최고의 상인 관객이 뽑는 상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를 받았다. 다음은 영화 상영 후 영화제 집행위원장 캐메론 베일리의 사회로 스필버그와 그의 분신인 새미 역의 게이브렐 라벨 그리고 새미의 아버지 버트역의 폴 데이노 및 새미의 어머니 미치 역의 미셸 윌리엄스 등과 가진 일문일답 내용이다.
-꾸준히 영화 예술을 앞으로 밀어붙이면서 우리들의 상상력에 불길을 지펴주는 감독을 환영합니다.
“매우 감사하다. 토론토에 초청 받은 것은 영광이다. 이 영화제는 내가 감독한 영화가 공식부분에 초청된 첫 영화제다. 지금까지 34편의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마침내 토론토의 관객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깨닫고 이 영화제에서 내 영화의 첫 선을 보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영화는 나를 대변하는 것이며 내 75년의 삶의 경험이 담겨 있다. 여기서 이 영화가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스필버그-이 부분 영화 상영 직전에 있은 감독 소개와 그에 대한 답변이다)
-이 영화는 당신의 가장 개인적인 얘기인데 왜 이제 와서 만들기로 했는가.
“영화에 대해 오래 동안 생각해 왔지만 언제 만들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의 은퇴작은 아님을 약속한다. 영화를 만들 가능성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를 나눈 사람은 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인 토니 쿠쉬너로 그와 함께 내 영화 ‘링컨’을 만들 때였다. 우리는 오랜 기간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나를 격려하고 또 얘기의 아이디어를 공급했다. 그러다 2020년 초 코비드가 터지면서 앞으로 예술과 삶이 어떤 상황에 빠질지 모르게 되었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만 하자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기자면 과연 그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것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세 여동생들에 관한 얘기여야 할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반드시 ‘지금 아니면 끝이야’는 아니었지만 그와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스필버그)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을 맡을 배우를 어떻게 골랐는지.
“나의 부모를 실제와 똑 같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로 우리 가족과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는 나를 낳고 키우고 또 내게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나의 어머니는 평생 동안 내가 돌풍을 따라 가도록 수많이 허락해주었다. 그런 어머니 레아 역으로 선뜻 생각한 것이 미셸 윌리엄스다. 내가 그의 연기에 감탄해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오래 전에 그가 나온 ‘블루 발렌타인’을 보고나서였다. 그래서 내가 미셸을 만나겠다고 부탁했다. 그냥 그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오래 동안 내 어머니 레아 역으로는 미셸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 아버지 역의 폴도 마찬 가지다. 폴도 내 아버지처럼 실제적이요 심오한 깊이의 인내심과 친절함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또 컴퓨터 디자인의 천재인 내 아버지처럼 폴도 비상한 두뇌를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토니와 배우 선정을 논의할 때 이 두 사람이 거론 된 것이다.“(스필버그)
-미셸, 스필버그의 연출 지도를 받은 경험은 어땠는지.
“마치 놀이터의 두 아이처럼 느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느꼈다. 둘이 함께 매일 가던 곳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스필버그가 내게 ‘이리로 와보라’고 말하면 난 그리로 달려가 ‘내가 여기서 무엇을 찾았는지 보세요’라고 말 한 뒤 그 것을 그에게 갖다 주곤 했다. 그러면 스필버그는 ‘그거 가지고 놀기 정말 재미있네’라고 말하곤 했다.”(윌리엄스)
-폴, 스필버그의 아버지 역을 하기가 어땠는가.
“우선 인물과 성격 묘사가 참으로 훌륭한 각본이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그리고 스티븐은 관대하게 우리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우리는 그와 그의 아버지 관해 몇 달간 얘기를 나누었고 또 그의 가족사진들과 홈 무비를 보고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떻게 한 사람이 산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2시간 30분짜리 영화 속에 그가 산 삶의 정수를 채우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가족 중에도 스티븐 가족의 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어 나는 마치 내 개인 얘기를 하듯 내 삶에서 그 무언가를 가져오려고 시도했다. 스티븐의 아버지 노릇을 하기란 상당히 무거운 짐이었지만 아름다운 경험이었다.”(데이노)
-스티븐, 영화에서 당신 역의 새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고교 3학년 때 깡패 같은 학생으로부터 주먹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데 유대인인 당신의 성장 경험은 어땠는지.
“왕 따 당하고 차별 받는 것은 내 인생의 한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보다는 반유대주의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그 것이 내 삶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나도 고교 3학년 때 두 깡패 동급생으로부터 시달림을 받긴 했지만 그 외에 학교생활은 문제가 없었다. 단지 그 두 아이들이 문제였다. 유대인이어서 차별을 받은 것이 내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그 것을 영화에 묘사하려고 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결코 반유대주의가 아니다.”(스필버그)
-게이브리엘, 새미 역에 선정된 과정은 어땠는지.
“제목도 안 정해진 앰블린 사(스필버그의 제작사 이름)의 영화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그 때만해도 감독과 각본가 등이 결정되지 않았을 때다. 난 두 장면을 위해 연기를 하고 이틀 후 내 에이전트에게 결과를 물었더니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이고 네 역이 스필버그야’라는 답을 들었다. 난 ‘아이고 하나님’이라고 소리를 질렀고 곧 이어 영화에 미셸 윌리엄스와 폴 데이노 등이 나온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그 뒤로 감감 무소식이어서 초조하게 기다렸더니 3개월 후 다시 면접을 하자는 통보가 왔고 이어 스필버그와 컴퓨터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새미 역에 정식으로 발탁돼 각본을 받았는데 난 10대의 새미 역만 하는 줄 알고 그 부분만 접어 읽었다. 그런데 그 게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된 새미 역 까지 맡아 영화 전체에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겁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난 모든 부문의 전문가들 가운데 앉은 아이일 뿐이었다.”(라벨)
-스티븐, 당신이 만든 영화들 중에 당신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준 분수령과도 같은 것들이 있다. ‘조스’와 ‘칼라 퍼플’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가 그 것들인데 이 영화도 당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당신이 말한 그 영화들이 나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각기 그 영화들이 나온 지 20년 후에야 깨달았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 것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내 세 여동생들인 애니와 수지와 낸시를 내게 보다 가까이 오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것들이야 말로 이 영화를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사다준 홈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특수효과까지 개발해내는데.
“내가 학생이던 1961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좋은 기계들이 없어 찍을 대상을 만들 때 풀과 침을 이용했다. 그리고 특수효과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고 영화관엘 갔다. 난 끊임없이 영화를 봤다. 그 때 영화관은 성전이요 궁전과도 같았다. 집에서는 TV로 영화를 보면서 전쟁영화의 폭발은 어떻게 만드는지를 곰곰 연구했다. 그러나 별 수단이 없어 내가 어렸을 때 만든 특수효과들은 널빤지에 구멍을 뚫어 만드는 등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내가 사용한 도구들은 다 실제로 내가 어려서 영화들을 찍을 때 쓴 것과 같은 것이다. 영화에서 내가 어렸을 때 하던 일을 다시 하자니 매우 환상적이었다.”(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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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