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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美 노조회계공개법

2023-01-02 (월) 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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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미국 트럭운수노조가 마피아와 결탁해 조합 공금을 횡령하는 대형 비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지미 호파 트럭노조위원장은 20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관리하면서 마피아의 폭력을 동원하는 대가로 마피아에게 조합 자금을 빌려주고 돈세탁을 도와줬다고 한다. 앞서 1953년에는 샌프란시스코항의 항만노조가 조직폭력배와 손잡고 부두의 노무자 공급을 독점한 채 불법과 폭력을 일삼았다. 연방 상원은 별도의 위원회까지 꾸려 거대 노조의 부패 및 비리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이를 규제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9년 제정된 ‘노사 정보 보고 및 공개법(LMRDA)’은 이 같은 여론을 배경으로 노조의 방만한 내부 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이 법은 필립 랜드럼 민주당 의원과 로버트 그리핀 공화당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해 ‘랜드럼-그리핀법’으로도 불린다. 이 법은 노조 선거와 회계의 투명성 확보에 필요한 회계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노동부에서 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노조 회계 공개법’인 셈이다. 노조는 정부에 제출하는 연차 보고서에 노조의 자산과 부채, 조합 임원과 직원의 임금, 대부금 이자 등의 정보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 노조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이 열람을 강제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미국은 법치주의 관점에서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법을 수차례 개정해왔다. 1947년 마련된 ‘태프트-하틀리법’은 노조의 불성실 교섭, 과도한 조합비 징수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했다.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파업에 개입할 수 있는 조항도 마련됐다. 단체행동이 제한되고 재정 상태마저 외부에 공개되자 미국의 노조는 급속히 영향력을 잃어갔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노조 회계 공개법을 모델로 삼아 거대 노조의 ‘깜깜이 회계’에 대한 대수술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을 제한하고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하는 개혁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조의 회계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 노조도 투명한 회계 자료 공개를 통해 진정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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