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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이 날라든 까닭은…

2023-01-0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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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swan)은 우리말로는 고니라 불린다. 한자로는 백조(白鳥)다. 말 그대로 하얀 새가 고니다. 그래서 블랙스완(흑고니)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중국의 시진핑은 이 블랙스완의 비유를 자주 사용해왔다고 한다.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시진핑이 중국이 직면한 위험을 강조하면서 블랙스완을 경고한 게 지난 2021년 1월이었던가. 이후 단골메뉴인 양 블랙스완을 언급해왔다.

그 블랙스완이 실제로 출현했다. 2021년 9월5일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흑고니가 날아든 것이다. 70여 년 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그 현장에 나타나 카메라를 의식이라도 했는지 도도한 발걸음으로 광장을 누볐다.


마오쩌둥이 죽기에 앞서 당산 대지진이 발생해 30여만이 목숨을 잃었다. 덩샤오핑의 죽음 전에는 중국북부지역에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있었다. 텐안먼사태 때는 혜성이 출현했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을 뭔가의 조짐, 예언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의 전통으로 그 의식은 여전하다.

텐안먼 광장에 블랙스완이 출현했다. 무슨 징후인가. 그 연장선상에서 던져진 질문이었다.

2022년에 중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까. ‘시진핑이 3기연임에 성공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대부분의 전망이 들어맞았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백지 시위’, 혹은 ‘백지 혁명’이라고 하던가. 베이징, 상하이, 청두 등 대도시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 시위가 발생한 사태다. 그 발단을 제공한 것은 수억의 중국인을 가택연금 상태로 몰아간 가혹하기 짝이 없는 ‘제로 코비드’정책이다.

무엇을 말하나. 2022년 중국의 메인 스토리는 다름 아닌 제로 코비드 정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막 펼쳐진 2023년 중국의 메인 스토리도 바로 이 ‘제로 코비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민란으로, 농민봉기로 무너진 왕조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게 무서워서였는가. 시진핑은 시위가 발생하자 서둘러 후퇴했다. 제로 코비드 방침에 따른 갖가지 조치들이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코로나는 독감에 불과하다’는 당국의 대대적 선전이다.

이와 동시에 오미크론은 무섭게 번지면서 뒤따른 것은 대혼란이다. 진단키트도, 해열제도 동이 났다. 의사도, 간호사도, 병실도 모자란다. 사람들은 코비드로 계속 죽어나가고 있는 데 화장장도 태부족이다.


문제는 현재의 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 싱크 탱크, 카운슬 온 포린 릴레이션스의 진단이다.

특히 우려되는 기간은 오는 21일, 그러니까 중국의 춘제(春節) 이후의 시점이다. 수억에 이르는 귀성객들이 농촌지역에까지 바이러스를 배달(?), 오미크론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대도시에서도 이미 의료대란이 발생했다. 모든 것이 빈약한 농촌지역은 자칫 아비규환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상황은 얼마나 악화될까. 네이처 메디슨의 연구에 따르면 올해 6개월 동안 160만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의료진의 예상은 더 비관적으로 코비드 사망자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최소 130만에서 210만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악몽의 시나리오들이 그렇다. 중국내 의료대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글로벌한 차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대로 대응을 못할 경우 시진핑의 리더십도 중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진단이 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25~27일 중국의 주요 도시와 대학들에서 들불처럼 번진 ‘백지시위’는 일단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베이징 당국이 소리, 소문 없이 시위자 검거에 나섰고 무엇보다도 ‘제로 코비드정책 철회’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에는 그러면…. 춘제 이후 예상되는 전국적인 의료대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인민의 분노는 또 다시 폭발, 대대적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포린 폴리시지의 전망이다.

백지 시위를 통해 중국의 인민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진짜 파워라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그런데다가 톈안먼 사태 때도 없었던 ‘공산당 타도’, ‘시진핑 퇴진’의 구호가 넘쳐 난 게 이번 시위의 특징이다. 뭐랄까. 중국의 인민들은 더 담대해졌다고 할까.

그리고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른바 ‘백지시위 세대’의 출현이다. 20~30대인 그들은 애국(愛國)은 곧 애당(愛黨)이란 식의 세뇌교육을 받고 자랐다. 따라서 시진핑 체제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들로 여겨져 왔던 것. 그런 그들이 거리로 나서, ‘언론자유’ ‘독재가 아닌 민주를 원한다’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황제는 필요 없다‘ 등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할 때 시위는 앞으로 위기 때마다 발생하고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려는 시위대가 거리마다 넘쳐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뉴요커지의 지적이다. 1989 텐안먼사태 이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내 시위는 일단 멈췄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같은 ‘백지시위 세대’인 중국 유학생들이 서울, 도쿄, 워싱턴, 런던, 토론토 등지에서 계속 시위를 벌이면서 금기시되던 위구르인들과 홍콩 시위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텐안먼 광장에 출현한 블랙스완, 도대체 무슨 전조일까. 계묘년(癸卯年) 새해 벽두에 새삼 다시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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