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주도 안 남았다. 2022년도 저물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날수로 365일. 시간적 넓이는 동일하다. 그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그런데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다사다난. 이 표현도 모자란다. 여전히 기승을 떨고 있는 코비드 팬데믹. 이상기후. 고 인플레이션, 에너지가 앙등. 세계적 불황, 거기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공산독재세력 중국의 발호…. 다사다난에 다재(多災)까지 덮쳤다고 할까. 그래서인가.
이 2022년은 그러면 어떤 해로 기억될까.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선정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의 나라(Country of The Year)로 우크라이나를 지정했다.
러시아라는 거대한 제국주의세력의 침략을 맞아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보여준 불굴의 저항정신. 그 의열(義烈)함에 서방의 대표적 언론들은 최대의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 우크라이나 국민의 정신은 전 세계에 감동과 인스피레이션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서방의 굳건한 연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스웨덴과 핀란드, 두 중립국이 가담함에 따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더 확대되고 강해졌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 두 언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2022년의 최대 사건으로 바라 본 것이다.
2022년은 푸틴의 계산대로라면 ‘푸틴의 해’가 되어야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됐다. 그 러시아제국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지내온 세월이 20년. 푸틴은 마침내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섰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우크라이나 합병은 제국부활의 첫 걸음이자 더 나가 20년 푸틴집권의 더없는 영광으로 장식 될 수 있었다.
그런데다가 미국은 종이호랑이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이른바 다극체제의 국제질서를 러시아가 시진핑의 중국과 함께 주도해 나갈 수 있다. 뭐 이런 계산까지 깔려 있는 게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10개월이 지난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드러난 것은 러시아군, 더 나가 러시아야 말로 종이 호랑이란 사실이다. 부패로 얼룩진 러시아군은 제대로 된 작전능력도, 병참능력도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거기에다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교정을 할 능력이 없는 것이 푸틴 체제다. 따라서 러시아의 패배는 필연이라는 것이 관측통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돌이켜 보면 미국 경제규모에 7% 정도에 불과한 러시아가 수퍼 파워 흉내를 냈던 것부터가 무리였다. 그 러시아가 무모하게 나대다가 군사적 파워로서의 위상마저 실추하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러시아는 'G20(세계 주요 20개국)'에서도 탈락, 더 이상 열강으로 불릴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패배는 푸틴의 몰락을 불러오고 이는 자칫 내란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한다.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다. 이것이 러시아의 역사다.” 포린 어페어스지는 이 같은 지적과 함께 1904년 노일전쟁과 뒤이은 1차 세계대전이후의 볼셰비키 혁명, 불발로 끝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소련제국 붕괴와 비슷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혼란의 시나리오 중의 하나는 ‘러시아판 군벌’들의 등장에 따른 내전발발이다. 푸틴의 사병조직인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있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그 군벌 후보의 하나다. 또 다른 유력 후보는 역시 푸틴의 측근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이다. 여기에 전통적 러시아 엘리트 출신 실력자까지 가세해 파워 게임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최악의 경우 러시아연맹 그 자체의 해체로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1598년 표도르 1세 사망 후 제위계승을 둘러싸고 내전이 발생, 반역에, 무법이 횡행했던 15년 동안의 암흑시대와 방불한 시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으로 포린 어페어스지는 전망했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제국 재건이라는 푸틴의 당초 목표와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해체에다가 벨라루스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이르는 전 유라시아지역,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의 분쟁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정학적 대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망조가 든 이 푸틴 러시아. 그 스토리가 그렇다. 뭔가를 강력히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소련으로부터 배태된 러시아의 쌍둥이 같은 체제가 시진핑의 중국이다. 일인지배라는 점에서 같은 반자유적인 전체주의체제인 회교혁명정권의 이란. 이 체제들이 모두 하나같이 위기에 빠져 허둥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실지회복을 기뻐하며 헤르손에서 노란색과 청색의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 베를린 장벽을 허물 듯이 히잡을 찢으며 거리로 나온 이란의 여성들. 백지를 들고 시위에 나선 중국의 인민들.
서로 겹쳐지는 이들의 모습에서 새삼 발견되는 것은 동시성 원리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 서로 결코 무관한 별개의 사건들이 아닌 것이다. 인터넷으로 긴밀히 묶여 있는 21세기 정보혁명의 디지털 시대에서는 더구나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은 독재세력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해라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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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