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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묻고 싶은 질문들

2022-12-08 (목)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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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부모가 되는 일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한 말이다. 지난달 칼럼에서 자녀가 “저, 트랜스젠더예요”라고 말했을 때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를 생각해보자고 적었다. 이번에는 트랜스젠더란 자식의 말을 듣고 난 후 부모는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할까 살펴보자. 잡지 ‘심리학 오늘’ 10월호에 나온 내용을 참조했다.

첫째, “나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었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무척 괴로운 물음이다. 자녀가 트랜스젠더가 된 원인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조상 중에 트랜스젠더가 있었는지, 아이를 키우며 자신도 모르게 학대한 적이 있는지 등을 세세히 알아본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쓸데없는 일로 자식을 더 괴롭힐 수 있다. 답은 “그런 게 아니다”이다.

둘째, “그럼 무엇 때문일까?” 확실히는 모른다. 태어나기 전 어떤 이유로든 엄마의 자궁 속에서 유전자 구조가 잘못 짜여 졌거나, 성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설이 학자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성 정체성 문제는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 걸쳐 거의 일정한 비율로 존재하고 있었다. 최근 UCLA의 집계에 의하면 미국 전역에 약 30만 명의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있다. 이는 예전 조사의 2배에 가깝다. 데이터 수집 기술향상, 성정체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개념 변화 등이 배경이다. 출생 시 지정된 성이 내면으로 느끼는 성과 꼭 일치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퍼져가고 있다. 더불어 몇몇 미정부 고위관리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나선 사실도 트랜스젠더 아웃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면서 그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


셋째, “트랜스젠더 현상은 단지 하나의 발달 단계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랜스젠더 청소년 300여명을 조사한 결과 95%는 5년 후에도 트랜스젠더로 남아있고, 2.5%만이 전통적 성개념으로 돌아갔다.

넷째, “왜 지금 아이가 그 말을 하나?” 대개 5-6세 때 그리고 사춘기 때 자신의 확실한 성정체성을 알게 된다. 5-6세가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성의 옷을 입어보거나 이름도 바꿔 부르는 사회적 변화를 시도한다. 사춘기 소녀는 처음 생리를 할 때 심한 심리적 불편을 호소하고, 청소년 남자는 목소리가 변하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문화적 기대, 종교적 갈등, 오명의 두려움 등으로 고민하다가 사춘기가 되어서야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케이스가 많다.

다섯째, “아이가 정신과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까?” 그렇다. 가장 많은 것이 성정체성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다. 출생 시 주어진 성과 내면으로 느끼는 성이 일치하지 않는 데 따른 심리적 갈등과 자기 신체구조에 대해 불편한 느낌 때문에 발생한다. 한 예로 헬스센터에 가기 싫어하고,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기를 매우 꺼린다. 주로 불안, 분노, 우울감으로 나타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물질남용도 많다.

여섯째,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적 수술 치료가 당장 필요하나?” 그럴 필요는 없다. 일률적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증세와 형편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해야 된다. 먼저 아이가 선호하는 성별 이름이나 대명사 호칭으로 불러주는 사회적 변화의 도움을 준다. 아이가 그 선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인 호르몬, 외과 수술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일곱째,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슬프다고 말해도 되나?” 물론이다. 부모는 딸이나 아들에게 걸었던 전통적 기대가 무너지는 허무감으로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하지만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식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너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게”라는 말은 자식의 정체성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외 “지금 당장 아이를 돕는 방법은 무얼까?” 자식을 그 방면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그의 말을 들어보는 게 첫째다. 또한 트랜스젠더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지지 모임에 참석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태도가 자식을 위해 바람직하다.

끝으로 부모는 성정체성 문제로 힘든 길을 가는 자식을 트랜스젠더 이슈를 넘어 한 인간으로 따뜻이 보듬어주어야 한다. 힘들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겠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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