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크루그먼 칼럼] 공화당에 맞설 민주당의 대책

2022-11-30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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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거둔 정당은 몸을 낮추는 게 정상이다. 고도 인플레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든 공화당은 그들의 추진하는 정책 목표의 일부만이라도 달성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민주당과 타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공화당은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다. 우선 정책 목표가 전무하다. 그저 부유층 감세와 빈민계층 지원 축소라는 반사적 욕망이 전부다. 물론 정책 아이디어도 없다.

공화당은 인플레이션을 중간선거 최대 이슈로 내세웠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는 근소한 차이로 하원을 확보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일가에 대한 조사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한마디로 협치는 없다고 일찌감치 선언한 셈이다. 협치는 고사하고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정운영을 방해하려 들 것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공화당의 정치적 방해공작을 저지하고, 여기에 앞장선 훼방분자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론에 들어가기 전에 공화당이 확신했던 붉은 물결이 물거품이 되었음에도 이들이 압승을 거두었을 때보다 더더욱 파괴적이고 무책임하게 행동하도록 만들 두 가지 이유부터 짚어보자.

첫째, 하원에서의 근소한 우위 탓에 하원의장이 유력시되는 케빈 매카시는 의총 의원 한명 한명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매카시로선 개인적 호불호에 상관없이 하원에 입성한 극단주의자들과 선거 부인론자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당내 극단주의 세력이 캐스팅보트를 거머쥐게 된다. 전 공화당 하원의원의 말대로 매카시는 명목상의 하원의장일 뿐 실세는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될 것이다.

물론 낸시 펠로시도 지난 2년간 근소한 의석차로 다수당이 된 민주당의 온건파와 진보파를 하나로 묶어 자신의 정책 아젠더를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매카시는 펠로시가 아니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은 MAGA파에 속한 공화당 의원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둘째는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다. 올해 민주당은 경제의 맞바람을 맞아가며 선거를 치러야 했다. 확실히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도 경제는 내년 초부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것이 공화당의 바이든 행정부 발목잡기가 더욱 거칠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예상되는 경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우선 극적으로 안정화된 시장 임대료가 아직 공시가 산정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상승폭은 조만간 크게 꺾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에 경기침체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완만한 수준에 그칠 것이고, 분명 다음 선거 이전에 끝날 것이다.

평소 행동으로 보아 공화당 지도부는 앞으로 2년간 당내 극단주의자들을 다독이고, 성공적으로 보이는 바이든의 국정운영에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기 위해 방해공작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의 지위가 유지되는 향후 몇 주 사이에 공화당의 예상되는 방해공작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는다면 공화당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하원을 탈환한 공화당이 정조준할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이슈는 채무한도와 우크라이나 지원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의 예산안은 의회에서 두 번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 표결은 지출을 승인하고 세율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출 법안이 예산적자로 연결될 경우 의회는 적자보전을 위해 차입을 승인하는 별개의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이 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공화당이 그랬듯 현재 상황에서 이 법은 정상적인 절차로는 정책 변경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경제를 볼모로 잡아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법을 이용해 채무한도의 중요성을 턱없이 부풀리는 방법으로 정부에 타격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수당의 무리한 태클에 정부가 번번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채무한도 상향조정에 실패할 경우 글로벌한 차원의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이 이같은 부정적 파급력을 감안해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믿기 힘든 용맹성을 과시하며 러시아 침략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러시아를 상대로 전투를 치르기 위해선 서방의 지속적인 군사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폭스뉴스의 방송인 터커 칼슨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화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차단에 나설 것은 뻔한 일이다.

한 가지 희망 어린 관측이 있긴 하다. 워싱턴포스트의 그레그 사전트가 지적하듯 민주당은 남은 의회의 레임덕 회기 동안 부채한도를 충분히 올려 이와 관련한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 역시 앞으로 수 개월간 전쟁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을만큼 넉넉히 책정해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이 제정신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이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미국인의 생활을 개선하기보다 국정혼란과 가짜 스캔들에 초점을 맞추는 공화당의 극단주의를 강력히 질타해야 한다.

노회한 보수 정치 평론가들은 분명 이런 노력에 조롱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중간선거를 지배할 핵심 이슈로 지목하고, 공화당 극단주의 세력이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바이든의 경고에 콧방귀를 뀌었던 장본인들이다. 지난 중간선거의 결과를 가른 이슈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극단주의 세력의 위협이었다.

앞으로 2년간 공화당이 불량하게 행동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악역 배우에게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만들기 위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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