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다. 우체부에게도 많은 환대를 베푼다. 가끔 ‘고마워.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우편물을 배달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우체부로서 기쁨이 넘친다.
우체부가 되어서 받은 가장 큰 친절과 환대는 눈 내린 후에 받은 것이었다. 일하는 지역인 버지니아 북부는 북위 38도이다. 눈 내린 후에는 우체부의 고난이 시작된다. 발이 눈에 빠지기 때문에, 그리고 미끄러질 위험 때문에 이동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 언덕이라도 있으면 미끄러질 위험이 더 커진다. 우체부도 미끄러지고 배달 자동차도 미끄러진다.
그때 우체부를 위해 길에 쌓인 눈을 치워 놓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우체부가 배달을 위해 다니는 길을 알고 길 위에 쌓인 눈을 치워놓았던 것이다. 이런 집을 만나면 우편물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사람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한다.
한 번은 문을 열어준 사람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아… 한국분이세요? 잠깐만요.” 하더니 사과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날은 추석 턱밑이었기에 추석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배달구역의 주민으로부터 쿠키, 초콜릿 등 과자와 과일, 빵 따위를 받는다. 여름날에는 시원한 소다를 받기도 하고, 병물을 받기도 한다.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만든 콜라와 초콜릿 과자를 비닐봉지에 넣은 후 ‘점심 후에 드셔’라고 적은 메모지를 붙여서 우편함에 넣어둔 집도 있었다. 그날 점심식사는 황제가 부럽지 않았다.
성탄절 즈음에는 감사의 뜻으로 선물이나 현금을 건네는 집들이 많다. 대개 현금을 주지만 우체부가 된 후 성탄절에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면도기였다. ‘우체부는 현금을 받으면 안 된다고 누가 그러기에 이것을 준비했어. 1년 동안 수고했어. 고마워.’라는 인사와 함께 받았다.
우체부가 된 후 맨 처음 받은 호의를 아직도 기억한다. 백인 할머니가 준 차가운 깡통 콜라였다.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의 더운 날씨여서 살짝 땀을 흘려가면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이었는데 할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차가운 깡통 콜라 하나를 가져왔다. 안 그래도 차가운 콜라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게 받고 보니 무척 기뻤다. 우체부 되고 나서 맨 처음 받은 이 호의에 대한 좋은 기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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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 우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