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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지불제 내물지정 (物之不齊 乃物之情)

2022-11-17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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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동들의 교과서인 동몽선습(童蒙先習)은 16세기 중종(中宗)때 유학자 박세무(朴世茂)가 지은 책으로 그 중 계몽편(啓蒙篇)은 윤리와 수신(修身)은 물론 하늘과 땅, 자연의 구성과 원리에 대해서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다.

이중 물편(物篇)에 ‘물지불제 내물지정(物之不齊 乃物之情)’, 즉 ‘물건이 가지런하지 않음은 물건의 자연적인 이치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공학자인 필자가 이 구절을 읽고 옛 선인들이 자연의 중요한 원리를 통찰하여 이처럼 간단하게 설명한 것을 보고 감탄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과학과 공학의 기본이 되는 열역학 제2 법칙, 즉 자연적인 변화과정에서는 사물이나 현상이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상태로 변화한다는 원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물은 가만히 두어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 원래의 모습이 가지런하지 않은 상태로 변하게 된다는 것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넓힌다는 뜻)의 한 부분을 어린 학생들에게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이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움직여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부터 변화하게 된다. 새로 산 물건을 쓰지 않고 잘 보관하여도 세월이 지나면 낡아지고, 쇠는 녹슬며, 잘 정돈되었던 집안이 어느새 어질러지고, 식탁의 음식 그릇들이 식사 후에는 지저분한 상태로 되며, 오래된 화장품이 못 쓰게 되고, 한곳에 모아 놓은 낙엽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것도 무질서한 상태로 향하는 열역학적 현상이다.

젊었을 때는 아름답고 팽팽하던 피부가 세월이 지나 노화되는 것은 몸의 세포들이 퇴화, 즉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하기 때문이며, 사랑도 처음엔 뜨거웠다가 세월이 가면 식고, 부부 사이도 허물없이 되며, 무엇이든 시작할 때는 긴장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나태해지는 것도 다 같은 원리이다.

이렇게 흐트러진 상태를 다시 정돈되고 질서 있는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늘어진 피부를 팽팽하게 하기 위해서는 돈을 써서 성형수술을 해야 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주고 비료를 주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헝클어진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며, 아이들이 어지럽힌 집안을 치우고, 또 더러워진 그릇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힘들게 일해야 한다.

이러한 열역학의 법칙은 냉장고, 에어컨, 엔진, 전자제품 등 수많은 기계와 장치를 만드는 원리가 되며, 법과 제도 역시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가 무질서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 또한 열역학 법칙의 테두리 안에 있다.
불가(佛家)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순응하라’는 뜻으로, 이는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 변화하여 하나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 것이므로 영원함이 없다’, 즉 무상(無常)하다는 의미이니 앞서 말한 원리와 서로 통한다.

이처럼 ‘물지불제 내물지정’과 ‘제행무상’의 가르침으로 부터 우리는 영원히 변치않는 것을 인간 세상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며, 영원 불변한 진리의 절대자(God)를 찾아 의지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gosasungah@gmail.com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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