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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 경제와 신칸센

2022-11-16 (수)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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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놀란 일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고속 기차 신칸센을 타보러 오사카역에 들렀는데 일본 역사의 모든 시스템이 과거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예약이 힘든 것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티켓을 사는데 조그만 종이표를 받고 개찰구에 삽입해 통과하라고 할 때는 한국인으로서 충격이었다. 서울역에서는 발권부터 탑승까지 모든 게 전산화된지 십수년이 지났는데 일본의 기차역은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신칸센을 타면서는 더 놀랐다. 이번에는 반대로 좋은 의미에서다. 먼저 기차의 겉모습이 너무 멋있다. 한국의 경우 코레일이 자랑하는 KTX는 일괄적인 디자인을 고집해 다 같은 모습의 열차인데 신칸센은 종류가 다양했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컨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차 앞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내부 공간도 KTX보다 넓었다. 기차의 핵심 성능인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은 물론이다.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차의 모습은 일본 경제의 현실이기도 하다. 디지털 환경은 최악이지만 아날로그 성능은 여전히 수준이 매우 높다. 과거 미국이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 절상을 유도해 일본 기업들의 부상을 억제한 당시처럼 2차 산업, 특히 중화학 공업의 경쟁력은 지금도 세계 일류다. 기계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업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와 혼다와 같은 기업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뛰어난 아날로그 산업과 반대로 디지털 환경의 뒤쳐짐은 심각하다. 일본 정부의 구시대적인 행정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했던 당시 일본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확진자 숫자를 표시하는 현지 관료들이 직접 필기해서 쓴 상황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도쿄에 사는 사람이 한국의 주민등록등본 같은 정부가 보증하는 신원증명서를 떼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다 오는 일도 일본에서는 흔하다.

전산화가 뒤쳐지면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다. 뛰어난 아날로그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 신칸센의 티켓값은 같은 거리를 가정하면 한국 KTX의 3~4배에 달한다. 아무리 여행이 편리하다지만 이렇게 비싸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활용하면 되는 일을 직접 역무원을 고용해 처리하려니 돈이 더 드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비용의 문제는 미래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도요타, 혼다와 같은 글로벌 선두 자동차 기업들이 미래차 시장인 전기차 산업에서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요타가 올해 초 야심차게 출시한 전기차 ‘bZ4X’는 주행 중 바퀴가 빠지는 문제로 판매된 차량이 전량 환불 리콜됐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물론 일본 입장에서도 매우 굴욕적이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아날로그 시대를 거의 벗어났다. IT 기술로 무장한 테슬라를 기점으로 자동차는 ‘바퀴 위에 달린 컴퓨터’라고 봐야 한다. 한국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만든 아이오닉5와 EV6를 보면 알 수 있다. 18일 개막하는 LA에서 열리는 ‘LA 오토쇼’에서도 시장의 관심은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에 쏠릴 것이다.

오사카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도시의 모습이 서울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자동차부터, 반도체, 조선업까지 산업 구조 측면에서 일본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달려온 한국 사회 전반의 모습이 일본과 유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와 같은 근간 산업에서는 여전히 한국보다 우수한 것도 사실이다. 신칸센처럼 빠른 속도에 집착해 누군가를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는 이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경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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