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쓰나미는커녕 레드 웨이브(Red Wave)도 없었다’-. 2022년 중간선거에 대한 총평이다.
중간선거는 정권심판의 성격이 짙다. 때문에 ‘현직 대통령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전통적으로 집권 여당에 불리한 것이 중간선거다.
1946년 이후 치러진 역대 중간선거 스코어를 보아도 그렇다. 두 번의 예외만 있을뿐 대통령이 소속한 당은 중간선거 때마다 연방하원 선거전에서 의석 손실을 기록했다. 그 평균 손실은 27석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50%가 넘을 경우 평균 손실 의석수는 14석, 지지율이 50% 이하일 경우는 37석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1%선을 마크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경제난에, 범죄급증 등 집권 민주당에게는 악재투성이 선거전이 올 중간선거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딴 판이다.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기는 했다. 그러나 과반을 조금 넘기는 정도다. 상원에서는 승리를 거두지 못할 지도 모른다. 바이든은 역대 급 선방을 한 것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관련해 CNN은 흥미로운 출구여론조사 수치를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무당파, 그러니까 중도성향 유권자의 49%는 민주당 후보를, 47%는 공화당 후보를 각각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중도파 유권자의 54%가 민주당을 선택했고 공화당 지지는 42%로 나왔다. 그 결과 민주당은 40석의 더 많은 하원의석을 확보했다. 2014년에는 중도 표의 54%가 공화당에 쏠리고 민주당 지지는 42%에 그치면서 공화당이 13석을 더 많이 차지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진영대결의 덫에 갇혀 있다’- 오늘의 미국의 정치풍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는 이번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도 입증됐다. 민주당 유권자들 96%는 민주당후보에게 한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화당도 마찬가지로 ‘묻지 마’식(역시 96%)으로 공화당후보에게 표를 몰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황에서 ‘49% 대 47%’- 거의 평행선을 그은 중도 표의 향방. 이는 민심이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극히 이례적인 선거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 수훈갑은 아무래도 트럼프로 보인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온갖 음모설을 신봉한다. 트럼피스트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한국식으로 표현해 ‘대깨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출마한 선거가 올 중간선거다.
트럼프에게 맹종에 가까운 충성심을 보인다. 그러면 개인의 자질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트럼프는 밀어준 것이다. 그 숫자가 300명 정도에 이른다는 것이 뉴욕타임스 보도다.
절대 열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민주당이 던진 마지막 카드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구호였다. 그런데다가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남편이 극우 성향의 음모론 신봉자에게 피습을 당했다.
이와 함께 무당파, 중도세력의 결집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AP 보트캐스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유권자의 35%가 트럼프에 반대의사를 표하기 위해 투표한 것으로 밝혔다.
그래서인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 주 연방상원 선거전에서 트럼프의 총아 메메트 오즈가 민주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시는 등 ‘트럼프 사람들’의 잇단 패배와 함께 예상했던 레드 웨이브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중간 선거는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아닌, 전직 트럼프에 대한 주민투표 성격이 두드러진 선거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의 지적이다. "유권자들은 과격세력의 광기에 지쳤다. 정상회복을 염원하고 있다. 이게 이번 선거결과가 주고 있는 메시지다." 이어지는 분석이다.
아이러니는 트럼프의 세계관과 정책에 유권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트럼프가 선거 캠페인 전면에 나서자 오히려 트럼프피로증세가 확산되면서 반대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경제도 중요하고, 범죄퇴치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자유(많은 여성 유권자의 경우 낙태의 자유도 포함해서)와 민주주의 수호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집결됐다고 할까.
그 결과를 타임지는 ‘비정상의 시대에 얻어낸 정상적 정치의 승리’로 평가했다. 다른 말이 아니다. 미국 민주주의가 특유의 자정능력을 통해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22년 중간 선거결과는 그러면 공화당에게는 우울한 소식으로만 가득 찬 그런 선거전인가.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뭔가의 서광이 비친 선거전이 아닐까 하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중간 선거를 통해 트럼프 독소랄까, 트럼프 피로증세랄까 하는 증후군을 비교적 조기에 진단해 낼 수 있게 됐다. 동시에 플로리다 주지사선거전에서 압승을 거둔 론 디샌티스가 ‘공화당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이 두 가지 사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화당은 레드 웨이브 불발의 악몽을 떨쳐내고 리더십 쇄신과 함께 2년 후 대선에 대비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바이든-해리스’티켓을 계속 고수해가면서 2024년 대선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역대급 선방’- 이를 바이든은 자신의 리더십이 이루어낸 공으로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재선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어서다.
80고령에 치매기를 보이고 있는 바이든과 트럼프의 자장(磁場)을 벗어난 젊고 패기가 넘치는 공화당 후보. 어느 쪽이 승산이 있을까. 레드 웨이브 불발은 공화당에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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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