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태원 참사 희생자, 두 번 죽이기
2022-11-09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
“여자친구랑 전화로 장시간 말다툼을 했죠. 그런데 그만 휴대폰이 제 목소리에 놀라 졸도를 한 거예요. 당황한 저는 용하다는 대리점을 다 찾아갔는데… 세게 뺨도 때려보고 찬물도 끼얹어 봤지만, 아저씨는 그건 휴대폰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지난 2003년 11월에 방송된 MBC ‘코미디하우스’의 ‘노(No) 브레인 서바이버’ 코너에서 코흘리개 아이도 풀 수 있는 문제를 틀린 개그맨 정준하의 대사 중 일부다. 짐짓 심각한 표정에다 손가락 포즈까지 더하면서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정준하의 대사는 국민 대사가 되면서 유행했다.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는 대사는 상대방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자신의 모욕감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개그맨의 유행어를 소환한 까닭은 요즘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지만 156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은 현 정부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희생자들이 국가 부재 속에서 죽어갔는데 아직도 ‘내 책임’이나 ‘정부 책임’을 언급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없다.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 대응에 대해 격노하면서 질책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무한 책임’과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라는 구체적인 이유와 목적어가 빠진 수사적 말만 남겼다.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은 경찰 및 소방인력 배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예년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경찰을 배치했다고 말하면서 실제 질서유지 인력은 30여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은폐했다. 해당 구청인 용산구청의 박희영 구청장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말해 공분을 자아냈다. 다행이랄까? 참사 직전 접수된 112신고 내용이 공개되면서 이들은 사과의 뜻을 내비쳤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말할 뿐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여기에 ‘참사’라는 용어 대신 ‘사고’로 규정하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도 발뺌과 선긋기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놀러간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편향된 시각에도 있다.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경찰의 무대응에서 비롯된 비극이 개인의 잘못된 선택에 의한 결과로 치부해버리고 국가 부재라는 구조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아 버리는 태도다. 놀러 가는 것은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 중 하나다.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함께 하는 외식, 볼거리와 놀거리를 찾아 거리에 나서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이어서 어느 누구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에서 자유롭지 않다. 희생자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산 것밖에 없다.
지원금 문제를 언급하는 태도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한국 정부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장례비를 포함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적절성 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마치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들이 보상비를 더 받기 위해 희생자들을 이용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의 데자뷰다. 모든 사안들을 돈과 결부시키는 조악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것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복합적인 참사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데 수사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으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해 현직에 있는 경찰 수뇌부의 직무 유기 책임을 밝혀야 할 경찰이 윗선을 제대로 수사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에서 수사 대상인 해경이 자신들의 총체적 부실 대응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셀프 수사의 참담한 결과를 이미 경험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두 번 죽이기를 끝내려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국정 총책임자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가 임명한 공직자들의 책임 회피와 전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참사가 사고가 아닌 인재라는 점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사과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애도의 과정에 진심 어린 사과와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빠졌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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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