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한 밤중에 젊은 여자가 정신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왔다. 미모의 여성이었다. 응급실 간호사를 대동하고 그녀를 신체검사실로 데려갔으나 너무 예쁜 금발의 여인이라 세밀하게 검사할 엄두조차 못 냈다. 환자가 옷을 입은 채로 가슴과 배에 청진기만 대보고 대충 검사를 마쳤다.
다음날 아침 병원장의 호통 전화를 받았다. “환자 신체검사를 하는 거요, 안하는 거요?” 알아 보니 그 환자는 상체만 여자요, 하체는 남자였다. 운전면허증에 성별도 이름도 여성으로 되어있어 남자로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샤워실에서 여자 환자들의 비명소리에 환자의 정체가 드러났던 것이다. 환자는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 케이스였다.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성전환이란 뜻으로 성소수자의 하나이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성과 성적 정체성 문제를 가진 사람들로 보통 LGBT로 통한다. 성적 지향성은 특정한 성에 친밀감과 끌림을 느끼는 현상이다. 자신과 같은 성에 끌리면 동성애, 반대 성에 끌리면 이성애,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끌리면 양성애, 끌리는 성이 없으면 무성애라 한다.
성적 지향은 정신과적 병이 아닌 개인의 성향으로 여겨진다. 임신 중 호르몬의 변화나 여러가지 신체 생리적 이상 작용이 주 원인이라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즉 성적 지향은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 생물학적 원인에 의한 현상일거라고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보고 있다.
반면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에 타고난 성과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이나 자신의 내면으로 느끼는 성이 다르게 나타나는 성정체성의 문제이다. 트랜스젠더의 범주에 속하는 논바이너리(Nonbinary)는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 성별로 분류할 수 없는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젠더 퀴어(Gender Queer)로 부르기도 한다.
트랜스섹슈얼은 의료적인 수술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성으로 변하기를 원하는 트랜스젠더이다. 앞의 환자가 그런 예이다.
국가와 사회가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법제화했기에 성소수자는 자연히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없다시피 했기에 가정, 학교, 군대 같은 집단 환경 속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예전의 동성애자들은 마음에도 없는 이성과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 이는 본인은 물론 배우자에게도 큰 불행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인의 인권 이슈란 측면에서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때는 미국의 경우 20세기 중하순 경이었다. 1990년대 냉전이 사라지고 민주주의 국가들도 복지를 중요시하는 진보적 사회경향 덕분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그런 시대조류를 타고 성소수자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때 성소수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말이 “나 이상한 게 뭐 어때서”였다. 한쪽 귀걸이를 하고 기이한 옷을 입은 남성 동성애자를 비롯 성소수자 모두를 이상하고 기묘하다는 퀴어(Queer)라는 말로 조롱하는 사회풍조에 대한 반발이었다.
지금도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종교계는 대개 성소수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중에도 보수 개신교 계통은 성소수자가 하나님의 뜻과 성경말씀을 어긴 죄인이기에 마땅히 처벌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일부 개신교 성직자들은 인간에 대한 사랑, 포용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교리에 따라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소수자를 안아주어야 된다고 맞선다.
최근 들어 트랜스젠더 이슈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빠르게 펴져가고 있다. 트랜스젠더의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많게는 10%에 달한다는 보고도 나왔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청소년 아들이나 딸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밝힌다면 부모인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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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