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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구나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2022-11-02 (수)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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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을 접하고 잊고 있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수많은 인파에 숨이 턱 막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던 경험은 과거의 나에게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을 위해 여의도공원을 향할 때, 벚꽃축제 또는 불꽃축제를 구경할 때, 콘서트장에서, 또는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빽빽한 인파에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사람들 틈에 끼어 압사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는 상상 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번 참사가 기괴하고, 어이없고, 참담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즐길 수 있는 핼로윈 축제로 젊은이들이 흥이 넘쳤던 지난 29일 서울 이태원. 오후 10시15분쯤부터 119에 압사 신고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핼로윈을 즐기기 위해 수만명의 인파가 이날 이태원에 방문했고, 좁은 골목길 내리막길에서 수십명이 쓰러지며 겹겹이 깔렸다. 오후 10시43분 소방 대응 1단계 발령, 오후 11시13분 소방 대응 2단계, 오후 11시50분 모든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됐다. 불과 1시간여 만에 소방 대응 3단계가 가동된 것만 보더라도 당시 상황의 급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태원 참사 사망자는 총 156명, 부상자는 총 151명. 사고 사망자는 남성 55명, 여성 101명으로 집계됐고, 연령대별로 보면 사망자는 20대가 104명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30대 31명, 10대 12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고 원인의 화살 방향은 어느 한 지점으로만 향할 수가 없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시민들의 무질서, 안전불감증, 공공기관의 기능부재가 맞물린 서글픈 결과다.

일각에서는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 첫 신고가 이뤄진 뒤부터 사고 발생 4분 전인 오후 10시 11분까지 총 11차례 참사 가능성을 경고하는 신고가 있었음에도 경찰이 안이한 판단을 하여 사고를 막을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 이태원 파출소 직원은 억울한 마음을 안고 온라인에 글을 남겼다. 글쓴이는 이태원 파출소의 직원 90%가 20~30대 젊은 직원이고, 이중 30% 이상은 새내기 직원으로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글쓴이는 인원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말마다 야간근무, 주간 연장근무를 뛰고 있고, 112 신고는 시간당 수십 건 씩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일 이태원 파출소 본 근무직원은 11명, 탄력근무자 포함 총 30명 남짓이 근무했다.

글쓴이는 당일 이태원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사실은 사전에 누구나 예상했던 바, 경찰청, 용산구청, 서울시 등 윗선에서 아무런 사전 대비를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잘못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그의 말대로 파출소 말단 직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윗선의 비겁한 행동이다. 뉴욕타임스는 공식 트윗을 통해 “한국 정부 기관 어디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며 “명백히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해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전문가들은 각종 통계와 데이터를 활용해 지하철 무정차 운행 시스템을 갖춰 한 지역에 과도한 숫자의 사람들이 유입되는 것을 조기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행사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협업할 수 있는 제도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와중에도 혐오를 담은 표현들이 온라인 곳곳에서 넘쳐난다. 적어도 지금은 혐오, 비난, 조롱 보다는 고인과 유족들을 위해 진심을 담아 애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 누구나 살면서 뜻하지 않은 재난과 사고를 마주할 수 있다. 이번에 운 좋게 피해갔을 뿐 누구나 참사의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깊은 슬픔 앞에서 함께 애도하고, 연대하는 길만이 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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