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진핑 집권 3기 출범과 관련해 한국의 한 논객이 던진 질문이다. 미국 언론들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진핑은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전 세계를 향해 그의 사악한 야망을 추구하려 들 것이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에 실린 한 논평이다.
‘중국 공산당 20차 대회 마지막 날 행사에서 시진핑은 옆에 앉아 있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을 퇴장시켰다. 그리고 권력의 최상층부인 7인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모두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최측근)으로 채웠다.’
이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는 중국의 권력 이양이 불안정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혼돈 속에 빠질 수도 있다는 진단과 함께 그 시 황제 통치 중국의 앞날 행로를 암울하게 내다 본 것이다.
지난 22일 폐막한 20차 당 대회는 사실상 시진핑의 황제대관식이었다. 이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의 3연임은 물론 종신집권의 길도 열렸다. ‘인민영수’의 지위가 부여됐고 ‘시진핑 사상’은 14억 인구의 중국을 이끄는 지도 이념으로 명문화 됐다.
이는 그러나 이미 수년 전부터 정해 놓은 것으로 그동안 준비를 거쳐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인지 황제 대관식 현장에 대한 미 언론의 관심은 심드렁하다고 할까 할 정도였다.
그 대관식에서 그러나 사상 초유의 괴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진핑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강제로 보이는 퇴장 해프닝이 그것이다.
사전의 치밀한 각색을 통해 연출되는 것이 당 대회로 일사분란하게 단합된 당의 모습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행사다. 그 당 대회에서 전 국가주석이 시진핑의 지시에 따라 강제로 퇴장당하는 광경이, 그것도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노출된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신화사 통신은 건강상의 문제로 보도했다. 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 언론은 다른 시각으로 이 해프닝을 집중조명하며 파고들고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역시 시진핑 지시에 따른 연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미 언론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왜. 시진핑 3기연임을 공식화하는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쿠데타설 등 소문이 무성했다. 이 잡음을 일소하고 모든 파워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 방법으로 시진핑은 전임자 후진타오를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는 해프닝을 고의적으로 연출했다는 거다.
이를 통해 또 다른 효과도 노리고 있다. 시진핑 비판세력, 더 나가 잠재적인 시진핑의 적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공산당 통치의 권력정치 세계에서 이는 항용 있을 수 있는 일로 지적하면서 이 해프닝은 레닌주의 좌파인 시진핑의 냉담함을 극명히 드러낸 사건으로 적시했다.
“중국 공산당 20차 전당대회에서 발생한 후진타오 강제 퇴장. 이 해프닝은 1979년 7월 2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한지 1주 만에 소집한 집권 사회주의 바트 당 회의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의 말이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열린 당 회의에서 사담은 66명의 바트당 고위간부들이 반역모의에 가담했다고 밝히면서 반역자의 이름을 하나씩 공개했다. 좌중은 공포로 얼어붙었고 반역자로 지목된 당원들은 끌려 나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참석자들은 자기 이름이 불리 우지 않으려고 충성심을 과시하며 앞 다투어 강경한 처벌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참석자들에게 거대한 공범 의식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모습까지 보였던 것.
그 66명 중 22명은 바로 처형됐고 그 해 가을 대대적 숙청이 뒤따랐다. 이후 이라크는 말 그대로 ‘사담의 나라’가 됐다. 절대공포를 통해 사담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 때 그 바트당 대회가 그렇다. 이후 펼쳐진 ‘피바다 사태’들의 전주곡으로 보여 진다는 것이 케이건의 지적이다.
4반세기에 걸친 사담통치기간 중 25만 여명의 무고한 이라크 인들이 희생됐다. 사담의 이란유전지대 점령으로 발발한 이란과의 전쟁으로 수십만이 죽었다. 쿠웨이트침공, 그에 뒤따른 1차 걸프전쟁, 2차 걸프전쟁에서 미군 전사자 7,000명을 포함해 또 다시 수 십 만 명이 희생됐다.
사담과 시진핑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시진핑의 황제 즉위식에서 묘하게도 사담의 메아리랄까, 그런 것이 느껴진다는 거다.
후진타오를 공개적으로 망신시키며 퇴장시키는 방법을 통해 사담과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반대세력은 그 누구든 제거될 수 있다는 공포를 확실히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중국과 비교할 때 아주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굶주린 사담의 등장과 함께 중동지역은 최악의 유혈 시대를 겪었다.
시진핑의 야망은 기껏해야 아랍권의 맹주를 꿈꾸었던 사담과는 비교가 안 된다. 중국몽의 망상에다가 권력에 흠뻑 취한 시진핑이 14억 인구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절대군주로 등극했다. 어떤 후과가 따를까. 케이건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5,000만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그리고 전 세계를 중국의 적으로 돌린 마오쩌둥 시대의 광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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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