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미 들은 이야기라면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터이다. 필자는 지금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가 부과했던 어설픈 관세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역전쟁은 첨단기술 수출과 관련해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단행한 광범위한 통제조치를 뜻한다. 이 같은 수출 통제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에게도 상당한 제한을 가한다.
트럼프의 관세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의 통제 조치는 분명한 목표를 지닌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바이든 행정부가 설정한 확고한 목표다. 대단히 공격적인 조치처럼 들린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먼저 전후맥락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로 오랫동안 서방측이 추진해온 세계화 정책의 취지는 상당부분 퇴색했다. 글로벌 차원의 통합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악한 일을 일삼는 일부 위험인물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결과인 긴밀한 상호의존이 국제무대의 악역들에게 종종 힘이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이와 함께 세계화는 선한 배우들에게 악한 배우들을 제어하는 능력과 방법을 제공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교훈을 마음속 깊이 새긴 듯 보인다.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세계화는 이런 게 아니었다. 보호무역주의 철폐와 파상적인 관세축소에 바탕을 둔 전후 세계무역 시스템은 교역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견해에서 출발했다. 바로 이것이 F.D.R.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자 호혜통상주의 시스템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델 헐의 신념이었다. 유럽연합(EU) 역시 유럽의 산업을 하나로 묶어 회원국들 사이의 전쟁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목표 아래 1951년에 결성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모체이다.
후일, 독일은 ‘교역을 통한 변화’라는 독트린 아래 러시아 및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강화한다. 이 역시 세계경제의 통합이 민주화와 법에 의한 지배를 촉진한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고, 예상은 빗나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잔인한 독재자가 다스리고 있고, 중국은 정치적인 퇴화를 겪으면서 말썽 많은 이전의 일인독재 체제로 돌아갔다.
세계화는 국가들 사이의 화합을 강화하기보다 국제적 대립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듯 보인다.
3년전 국제관계 전문가인 헨리 파렐과 에이브럼 뉴먼이 발표한 “무기화된 상호의존: 글로벌 경제네트워크가 조장한 국가의 물리력 행사”라는 논문은 미래를 꿰뚫어본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국가들이 각기 자국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경제력(economic power)을 행사하던 기존의 무역전쟁은 힘을 잃었다. 대신, 요즘의 경제력은 지극히 중요한 재화와 용역, 금융과 정보에 다른 국가들이 접근하지 못하게끔 제한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처럼 새로운 경제력은 대부분 서구, 특히 미국이 쥐고 있다.
물론 서방만이 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 중단을 앞세워 유럽을 겁박한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전의 가장 큰 이변은 개전초기 미국과 미국의 우군들이 중요한 산업용품 및 자본재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러시아의 수입이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경제 제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수행 능력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여기서 다시 세계화와 국가안보에 관한 바이든 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돌아가자.
지난주 미국의 무역대표부 대표인 캐서린 타이는 국가안보를 산업정책의 부분적 목표로 삼아야한다는 놀랄만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녀는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중국의 산업정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무역 자유화에 따른 효율성 향상이 “우리의 공급망을 더욱 약화시키고, 의존도 위험을 심화시킨 대가로 주어져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같은 날,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새로운 수출 통제정책을 발표했다. 느닷없이 미국이 세계화에 역행하는 강경노선을 취한 셈이다.
필자는 이 같은 정책변화의 원인을 짚어줄 내부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첨단기술 수출 통제 정책은 글로벌한 차원의 위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제력을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미국의 고양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 보면, 교역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푸틴의 러시아는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웃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하면서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중국의 타이완 침공은 자멸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가능성이 시진핑의 침공 시도 포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반대로, 러시아 제재의 초반 성공은 서방국들, 특히 미국이 지닌 막강한 경제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첨단기술 수출통제 정책은 앞서 중국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일맥상통한다. 당시 중국은 반격에 나서지 못했다.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첨단기술 분야에 관한 한 미국이 여전히 ‘확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확전 우위란 전쟁을 확대할수록 적대국에게 더 큰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극히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깃털만 잔뜩 부풀린 허세가 아니라 진정한 강함(toughness)을 향해 과감하게 돌아선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하지 못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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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