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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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각오 (아직 늦지 않았어)

2022-10-22 (토) 김미라 /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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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오~ 세이 캔 유 씨~, 바이 더 다운스 얼리 라이트~)” 20여년 전 엄마는 시민권을 취득하려고 미국 국가를 거의 몇 년을 날마다, 아니 자나깨나 부르셨다. 노인 아파트에 사신 지 10년이 넘었을 즈음 “미국 국가만 외우면 시민권을 준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이웃에게 들은 후부터 엄마는 ‘The Star Spangled Banner’를 열창했다. 손주가 가사를 한국어로 달력 뒷장에 커다랗게 적어 거실 한가운데 걸어주고 카세트테이프에 미국 국가를 반복 녹음하여 간단하게 작동되는 카세트까지 사서 할머니에게 응원과 함께 선물로 드렸다.그날부터 엄마는 부르고 또 부르고 밤낮없이 따라 부르셨다. 오죽하면 바로 옆방 할아버지가 엄마보다 먼저 미국 국가를 외우셨다며 우리를 만날 때마다 “너의 엄마는 대단하셔!”라고 감탄했다. 그 할아버지는 “시끄러울텐데 괜찮으신가요?” 하는 우리의 우려를 엄마의 열정에 대한 칭찬으로 덮어주셨다. 고맙고 미안했지만 우리 역시도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에 감동의 박수와 응원을 보내드렸다.

어제는 뷰트 칼리지 ESL 과정 가을학기 첫날이었다. 나는 파라다이스로 이사 오고난 후 일년 전부터 이 학교에서 컴퓨터와 ESL 클래스를 수강하고 있다. 여름 방학을 끝내고 가을학기가 시작된 어제 같은 반 새 친구들과 처음 만났다. “저 혹시, 한국분이세요?”라고 내게 말 걸어준, 예쁘장하니 곱게 생긴 여자분은 작년에 산호세에서 파라다이스로 이사 왔다고 했다. 반가움에 수업을 마치고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저는 교회 피아노 반주자예요.” 아니, 피아노 반주자! 눈이 번쩍, 너무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달라보였다. 사실 요즈음 나의 희망은 찬송가 반주를 잘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제 막 목사님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에 반주자가 귀할 뿐 아니라 없어서 뒤늦게 본인이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하루에 적어도 6시간씩 연습을 했단다. 그녀도 나같이 피아노 기본 정도만 쳤었다고 했다. 처음엔 반주자가 된다는 게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있을까” 했던 내 반신반의 희망 사항이 어느새 “해내야 한다!”는 각오로 바뀌었다.20여년 전 시민권 취득을 위해 밤낮으로 열창하던 70세 넘은 울 엄마나 목사 남편을 보필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피아노 반주자가 된 50세 열혈 아줌마. 이 얼마나 위풍당당한가. 난 오늘도 피아노를 친다. 그 언젠가 내 피아노 반주로 모두 함께 찬양할 “그날을 위하여!”

<김미라 /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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