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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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자리와 난자리

2022-10-15 (토) 오소영 노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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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과 취업의 이유로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킨더가든부터 하이스쿨 12학년까지, 학교 갔다 방과 후 액티비티가 있어도 집에 꼬박 들어왔던 아이들이 같은 주나 타주로 독립을 하게 되면 해가 넘어가도 집에 들어오질 않고, 아이들이 썼던 방엔 불이 켜지지 않는다. 북적대던 집이 고요해지고, 늘상 어지럽혀있던 집안은 가지런히 정리돼있는 채로 먼지만 쌓여간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아이들의 존재감이 가족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었는지 그들이 떠난 뒤에야 새삼 절감하게 된다.

빈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자녀가 살던 방에 책상, 침대 그리고 썼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데 아이만 없는 텅빈 느낌. 같이 살았을 땐 함께 밥을 먹고, 여행을 가고, 계획을 짜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어 새롭게 자기 삶을 찾아 떠나는 자녀의 빈자리를 보며 밀려오는 공허감과 더 잘해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회한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있을 때, 잘 해”라고 흔히들 말하나 보다. 시간의 유한성 원리에 의해 모든 건 때가 있어서 제 때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고,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풍성하게는 못 해줬어도 처해진 형편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더 잘 해주지 못한 것만 떠오르는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부모와 자녀는 일생에 두 번의 큰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첫 번째는 엄마의 뱃속으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에 나오는 육체적인 아픔이고, 두 번째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며 살다가 성인이 되며 어엿한 객체로 분리되는 정신적인 아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게 뭔가를 떠나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낯설고, 두근거리고, 생경스러운 새로운 세계로의 입성이 순간 자신을 삼킬 듯 거대한 풍랑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한 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18년의 시간이 어쩜 그리도 쏘아버린 화살처럼 빨리도 지나갔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미국 할머니들이 “인조이, 유어 타임”하고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시간이 긴 거 같아도 순식간 지나가니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며 살아가라는 말씀이었음을.

가끔씩 집 앞 나무속에서 새들의 둥지를 보게 된다. 어미 새가 나뭇가지로 둥지를 지어놓고, 알을 여러 개 낳아놓는다. 며칠 후 알에서 아기 새가 깨어나고, 어미 새는 먹이를 물어다주고, 비가 거세게 오면 어미의 날개로 새들을 감싸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우곤 어느 정도 크면 아기 새들의 깃털도 생기며 하나둘씩 떠나 둥지는 텅 비게 된다. 그 빈 둥지를 보며 처음엔 서운했지만 어디선가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날 새들을 상상해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본능에 순응하는 생명의 사이클에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자녀들이 언제까지나 부모 품에서 살 수는 없고, 그들도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서기 위해 더 큰 세상으로 걸어 나갔음을 인지하며, 빈 둥지 증후군에 매여 감정적인 외로움과 쓸쓸함에 사로잡혀있지 않고, 이제 나 자신을 위해 뭔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대학 간 자녀가 벌써 가을 방학이라고 2주 후면 온다고 한다. 낯선 곳에 가서 잠자리 바뀌고, 새로운 곳에서 새 친구 만나 적응하느라, 혹은 어려운 전공과목 배우느라 많이도 애썼을 텐데 뭐라도 맛난 거 해주러 시장이라도 나가봐야겠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방에 불이 켜지겠지.

<오소영 노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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