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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세력 수난시대’, 그 함의는…

2022-10-0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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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불황이 깊어가고 있다’- 자유가 확장되기보다는 줄어든 나라가 더 많다. 프리덤 하우스의 이 같은 보고가 16년째 계속 발표되면서 나온 말이다.

2010년 ‘아랍의 봄’ 때 유일하게 민주국가로 발 돋음 했다. 그 튀니지가 다시 독재로 돌아섰다. 벨라루스, 에티오피아, 수단, 짐바브웨 등의 국민들은 민주화를 열망한다. 그러나 하나 같이 권위주의 독재자가 다스리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7개 민주국가가 2015년 이후 권위주의 체제로 변모했다. 방글라데시, 헝가리, 튀르키예 등 많은 국가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그러나 투명성이 보장된 투표가 아니다.


민주주의 퇴행현상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곳에서도 목격된다. 트럼프를 배출한 미국이 바로 그 경우로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결손민주주의로 부르면서 코스타리카, 칠레 수준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지면서 시대사조(Zeitgeist)에도 큰 변형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지적이다. ‘민주주의는 부패하고 낡아빠졌다. 미래는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권위주의 체제에 있다’는 내러티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서사와 함께 중국, 러시아로 대별되는 권위주의 독재세력은 승승장구의 행진을 벌여왔다. 그 피크를 이룬 시점은 푸틴과 시진핑이 남다른 우정을 과시한 2022년 2월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때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2022년 9월 중순의 시점. 권위주의 독재세력 전선에 돌연 뭔가 이상사태가 발생했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때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과 수 주의 기간 동안 때로 10년 세월에 걸쳐 일어날 것 같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기도 한다.”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빗대 한 말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그 같은 상황이 권위주의 진영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전해진 뉴스들은 그 각각이 엄청난 지정학적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궤멸상황을 맞았다는 보도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회교혁명정권의 이란에서 확산되어가고 있는 거리 시위다.” 포린 폴리시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로버트 카플란의 말이다.

베이징 발로 들려오는 소식도 암울하기만 하다. 경제는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에 대한, 특히 시진핑에 대한 세계 여론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가히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았다고 할 정도다.


푸틴 러시아도, 이란의 회교혁명정부도. 중국 공산당 정권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체제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 몇 년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배설한 모순이 쌓이고 쌓인 결과 체제가 내부로부터 크게 동요,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할까.

공교로운 것은 그 이상 징후가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면서 독재권력 수난시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진지를 이탈해 무질서하게 달아나고 있는 러시아군, 그 대응책으로 동원령 발표와 함께 핵 공격위협을 해대고 있는 푸틴. 이란 시민들의 수모대상으로 전락한 회교혁명정권의 허둥대는 모습. 여기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머지않아 닥쳐올 이 두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카플란의 지적이다.

이란 사태를 먼저 들여다보자. 이란은 중동지역의 중추국이다. 그 이란의 회교혁명정권 붕괴는 시간문제로 중동-아랍권의 정치지형을 근본에서 뒤흔드는 대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수 십 년에 걸친 수니 대 시아의 회교권 종파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됨으로써 이스라엘과 보수 아랍 국가들의 전략적 입지가 크게 강화되고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이 안정화되는 것이 우선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더 나가 세계의 지정학에 이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푸틴체제의 종말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말 그대로 ‘천하대란’급의 사태변전을 불러올 수 있다. 러시아연방 그 자체가 와해되고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이 계속 동쪽으로 확장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의 중국몽 구상에도 심대한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
“시진핑의 황제등극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 중국은 전례를 찾기 힘든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의 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성장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경제는 시진핑의 무리한 제로 코비드 정책으로 더 말이 아니게 되면서 중산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시진핑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대일로정책도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면서 엄청난 자금이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백만장자들은 경쟁이나 하듯이 해외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침몰직전 배를 탈출하는 쥐떼의 모습을 방불케 하고 있다고 할까.

푸틴 러시아의 몰락은 미국과 서방의 중국봉쇄망 대대적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서부전선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모든 군사, 정치, 경제, 외교력을 중국포위와 압력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권위주의 독재권력 수난시대. 이는 ‘미친 소’까지 소환된 한국의 정치판에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해온 종중, 종북세력의 급작스러운 일패도지(一敗塗地). 뭐 이런 걸 예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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