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gradually, then suddenly).”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파산은 그렇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이 대반격에 나섰다. 그러기를 불과 수 일 만에 러시아에 빼앗겼던 영토 3,000㎢를 수복했다. 키이우 수성 후 최대 성과로, 러시아는 엄청난 사상자에 7,000명이 넘는 장병이 포로가 되는 등의 치욕적 패배를 기록하면서 점령 6개월 만에 퇴각을 하고만 것이다.
‘히루키우 대첩’이라고 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0일이 넘은 시점에 이루어진 이 극적인 상황 전개는 어쩌면 이 전쟁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헤밍웨이의 이 어록이 새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오랜 지루한 대치, 그 소강국면이 갑자기 변전되면서 월등히 우세해 보이는 군이 어느 순간 무너지면서 궤멸상황을 맞는다. 우크라이나 군의 히루키우 주 탈환이 바로 그 케이스로 이는 전쟁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무엇이 히루키우 대첩을 불러왔나. 그 복기(復棋)가 한창이다. ‘남부 헤르손 탈환 작전 정보를 흘려 러시아군을 유인한 뒤 동북부 총공격에 나선 성동격서(聲東擊西)작전의 승리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작전 조언이 주효한 결과다’ 등등.
모두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또 다른 요인은 없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대전이후 발생한 그 어느 전쟁보다 교전 당사국의 ‘핵심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체현된 전쟁이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의 지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이 입장을 충실히 견지하며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수행해왔다. 러시아군이 엄청난 병력에, 화력을 동원해 공격해오면 장병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바로 철수 시킨다. 이런 식으로 철수에 철수를 거듭, 병력을 아껴 힘을 비축했다가 반격에 나섰다.
러시아 지도부는 전략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작은 땅덩어리 점령을 위해서도 막대한 인명 희생을 마다 않는다. 우크라이나 군은 치고 빠지는 식의 전술을 구사, 바로 그 같은 식의 공격을 계속 유도, 막대한 타격을 입힘으로써 러시아군의 공격능력을 소진시켜왔다
러시아 군은 우크라이나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차별주의에, 교만한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해왔다. 특히 고질적인 문제는 지도부는 물론 하급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전군에 만연한 부패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아왔다. 다른 말이 아니다. 최신병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넉넉하다는 거다. 그런데 군 장비는 하나같이 불량품들이다. 첨단의 미사일이 과녁을 벗어나기 일쑤일 정도다. 군 지도층의 심각한 부패 때문이다.
만연한 부패는 모병에서 장병들의 급식, 심지어 전투기 조종사들의 훈련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러시아군 병력의 대다수는 빈곤에 찌든 변방 소수민족 출신이다. 러시아의 반체제 매체 베르스티카에 따르면 이들 병사들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배가 고파서, 또 살기 위해 전선을 이탈, 달아나고 있다는 거다.
푸틴 1인 독재체제에서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때문에 그들은 러시아군이 아주 강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운다. 이처럼 모순과 부조리가 하나 둘 쌓여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러시아군의 붕괴는 바로 부패와 권위주의 독재의 직접적 결과라는 것이 더 힐의 진단이다.
히루키우 대첩은 그러면 어떤 후과를 불러올까. ‘전쟁에 대한 내부 불만이 고조되면서 푸틴은 권력유지에 최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대다수 러시아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푸틴의 통제 하에 있는 러시아 국영방송에서 러시아의 전략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토크쇼가 방영됐다. ‘러시아의 정치 1번지’격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등지의 지방의원들이 공개적으로 푸틴퇴진을 요구했다. 심지어 푸틴의 심복격인 체첸 지도자까지 러시아군의 패주 사태에 군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20년 푸틴 1인 체제 하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이 모든 것들은 뭔가의 예후가 되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히루키우 대첩은 우크라이나에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서방을 더욱 결속시키고 있다. 이 같은 흐름과 관련, 러시아 역사가 앤 애플바움은 애틀랜틱지 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푸틴의 실각에 대비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푸틴 통치의 적법성은 ‘상승군 이미지의 강력한 군’이 떠받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수모로 그 러시아군에 대한 국내의 신뢰가 무너졌다. 거기다가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심각한 인구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자칫 러시아연방의 해체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러시아판 천하대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뭔가 하나의 그림이 오버랩 되는 느낌이다. 국민의 분노와 불만으로 이미 정치적 파산상태를 맞았다. 그런데도 일말의 성찰도 없다.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권력과 이재명과 ‘개딸’의 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행태다. 그들이 맞이할 운명도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천억의 태양광 비리와 관련, ‘이권카르텔’을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대대적 사법절차에 따른 강력한 사회정의 구현의 신호탄으로 보여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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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