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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발생하는 자연재해로 고향 떠나는 ‘기후 이민자’ 늘어

2022-09-08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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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구입 전 지역 기후 위험도 반드시 확인해야

매년 발생하는 자연재해로 고향 떠나는 ‘기후 이민자’ 늘어

2020년 오렌지카운티 요바린다시에서 발생한‘블루릿지’ 산불을 주민들이 뒷마당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매년 발생하는 자연재해로 고향 떠나는 ‘기후 이민자’ 늘어

북가주 모데스토 농장 지대의 관개수로에서 물이 나오고 있다. 이상 기후로 가주에서는 수년째 가뭄과 산불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로이터]


이상 기후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막 지역에 폭우가 내리는 가하면 남가주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다시 찾아왔다. 자연의 변화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단지 이상 기후 지역을 떠나 안정적인 기후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유일한 대비책이다. 최근 극한의 기후와 각종 기상 이변을 피해 타지역으로 이주하는 이른바 ‘기후 이민’(Climate Immigration)이 늘고 있다. US월드뉴스앤리포트가 급증 추세인 기후 이민 현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 이상 기후에 정든 고향 떠난다


기후 이민은 이상 기후 취약 지역에서 온화하고 안정적인 기후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수나 산불 등 자연재해 다발 지역 주민이 거듭되는 피해를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나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가뭄이 지속되는 지역에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새로 둥지를 트는 사례도 자주 보고되고 있다. 일부는 이미 발생한 자연재해의 피해로 반강제적으로 타지역으로 떠나기도 한다.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국립 환경 정보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만 10억 달러 피해 규모의 기후 및 자연재해가 20 차례나 발생했고 2020년의 경우 22건이 보고됐다. 이 같은 자연재해가 해를 거듭할수록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고 발생 지역 규모도 점차 커지는 추세로 자연재해로 인한 기후 이민도 급증할 전망이다.

◇ 홍수, 허리케인 잦은 해안가 지역 많이 떠나

싱크탱크 어반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최근 보고된 사례는 2018년이다. 당시 한 해에만 12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자연재해로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이른바 자연재해 난민으로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기후 이민자들이다. 미국에서 기후 이민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해안가 지역이다. 뉴올리언스와 휴스턴과 같은 도시의 경우 허리케인과 대규모 홍수로 최근 수년간 자연재해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따르면 2005년 발생한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뉴올리언스 주민 중 45만 5,000여 명이 거주지를 떠나 타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카트리나 피해로 급감한 도시 인구는 수개월 뒤에도 여전히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기후 이민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홍수 피해가 잦은 남부 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알래스카주는 심각한 자연재해 피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피해뿐만 아니라 기온 상승으로 지반이 녹으면서 심각한 건물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2년 발생한 대규모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로 뉴욕과 뉴저지주의 수많은 해안가 주민이 기후 이민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 자연재해 지역 모르고 집 살 때 많아


‘국립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의 애나 웨버 정책 연구원은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라며 “기후 이민자 대부분은 주택 구입 시 자연재해 지역인지 모르고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웨버 연구원은 한 예로 홍수 다발 지역 자료가 정확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웨버 연구원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주는 주택 매매 시 직전 홍수 사실을 공개하거나 홍수 지역임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또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관리하는 ‘홍수 보험 지도’(Flood Insurance Map)의 경우 현재 파악된 위험만 보고하고 있고 향후 발생 가능한 홍수 위험을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 점도 시정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수자원 풍부한 내륙 주로 많이 몰려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에 시달리다가 기후 이민을 택한 주민은 되도록 직전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 거처를 마련하는 경향을 보인다. 홍수 피해를 입은 해안가 주민은 타주보다는 같은 주의 내륙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홍수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이를 피해 내륙 주로 이주하는 기후 이민이 많은 편이다.

지역정보업체 ‘주민 기술 센터’(Center For Neighborhood Technology) 설립자 스캇 번스타인에 따르면 기후 이민 목적지로 유타, 뉴멕시코, 네바다, 아이다호 등 중서부 내륙 주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튤레인 대학의 제시 키난 기후 변화 전공 부교수는 2050년까지 미국 해안가 해수면이 1피트 상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약 5,00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미시건, 미네소타, 위스컨신, 아이오와 등의 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대호 인근 주의 경우 수자원이 풍부해 가뭄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의 이주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 오염이 심한 지역의 주민은 공기 청정 주로 알려진 매사추세츠와 노스다코타 주로 유입이 많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 수년째 가뭄으로 인해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가주는 가뭄 피해에 덜 취약한 지역으로 꼽혔다. 반면 관개 시스템과 가뭄 대비 시스템이 취약한 오클라호마, 몬태나, 아이오와주의 경우 가뭄 발생 시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의 기후 이민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 기후 위험도 공유 시스템 마련 시급

지난해 미국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절반이 자연재해를 이유로 1년 내에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기후 이민자들이 자연재해로 다시 이사해야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기후 위험도 정보 공유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된다.

매튜 칸 USC 경제학과 교수는 “바이어들이 주택 구입 전 기후 위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주택 구입 뒤 후회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며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도시에 정부 예산이 많이 배정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주민이 많이 유입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라며 기후 위험도가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강조한 바 있다.

부동산 중개 업체 레드핀은 지난해 자사 매물 검색 사이트에 지역별 기후 위험도 제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후 정보 제공 스타트업 ‘클라이밋체크’(ClimateCheck)와 공동으로 실시되는 서비스로 바이어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해당 지역의 기후 위험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다. 기후 위험도 범위는 0에서 100까지로 0인 경우 자연재해 위험이 전혀 없는 지역이며 100인 경우 자연재해 위험도가 매우 높은 지역에 해당된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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