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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앵커, 춤추는 총리

2022-09-07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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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명의 유명한 여성이 이상한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 사람은 캐나다 최대 민영방송사 CTV의 뉴스앵커 리사 라플람(58), 캐나다의 바바라 월터스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간판앵커다. 그런데 지난달 15일 라플람은 34년간 일해온 CTV의 모회사 벨미디어로부터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녀의 ‘흰머리’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분노와 반향이 일고 있다.

라플람은 2년여 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용실에 갈 수 없게 되자 머리염색을 멈추고 희끗해진 머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채 방송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 초 CTV에 새로 부임한 수장이 “누가 리사에게 흰머리를 해도 된다고 승인했느냐”며 문제를 제기했고, 곧바로 사내 구조조정을 핑계로 잘랐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 측은 해고 결정이 라플람의 머리색깔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두달전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에서 ‘베스트 뉴스앵커’상까지 받은 베테런을 한마디 상의나 경고 없이 내쫓은 것은 여성혐오(misogyny), 성차별(sexism), 나이차별(ageism)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가적인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는 라플람 지지의 뜻으로 ‘백발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웬디스’는 자사 로고에서 빨간머리 소녀의 머리색을 회색으로 바꿨고, 화장품회사 ‘도브’는 “노화는 아름답다”란 글과 함께 금색이던 트위터 로고를 은색으로 바꿨다. 또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과거의 수퍼모델 메이 머스크(74,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가 지난 5월 백발로 수영복을 입고 커버에 등장했던 사진을 리트윗 함으로써 연대를 표시했다.

같은 시기에 곤욕을 치른 또 한 여성은 산나 마린(36) 핀란드 총리다. 2019년 34세에 총리가 되어 세계 최연소 선출직 지도자로 기록된 그녀는 평소 가죽재킷을 즐겨 입고 록 콘서트에 다니는 것을 숨기지 않는 신세대 정치인이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주말 밤 친구들과 요란하게 춤추고 노는 영상이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큰 물의가 빚어졌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젊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이라는 주장이 맞서며 나라 전체가 떠들썩해진 것이다.

문제가 커지자 마린 총리는 자청해서 마약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내보였으며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고 해명했다. “나도 사람이다”라고 말을 꺼낸 그는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가끔은 먹구름이 낀 시기에도 즐거움, 밝음, 재미가 그립다”면서 “나는 단 하루도 업무를 빼먹은 적이 없고 그 어떤 일도 미룬 적이 없다. 그 주말에는 아무 업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정치인도 개인적인 시간을 자유롭게 즐길 권리가 있다”면서 “여가시간을 어떻게 즐기는 지보다 총리로서 하는 일을 봐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런 소동이 일자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주 자신의 트위터에 2012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기간 중 휴식시간에 찍힌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에서 클린턴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웃는 얼굴로 춤을 추고 있다. “난 당시 국무장관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는 설명을 부연한 클린턴은 마린 총리의 트위터 계정을 링크한 뒤 “계속 춤춰”(Keep dancing)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다 아던(42) 뉴질랜드 총리는 “늘 그랬듯 우리(젊은 여성 정치인)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고 위로했고,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성숙하지 못하다고 뭇매를 맞는 모양인데 그녀는 핀란드를 나토에 가입시켰을 만큼 성숙하다. 그건 대단한 일이고, 나였더라도 파티 좀 했을 것이다”라고 응원했다.

위의 두 사람이 남성이었다면 흰머리와 파티가 이처럼 큰 문제가 되었을까? 흰머리를 보이는 것이 앵커로서 자격상실인가? CNN 앵커 앤더슨 쿠퍼, 데이트라인 NBC의 크리스 핸슨, ABC 게임쇼 호스트인 크리스 해리슨은 지금 모두 은발인 채로 방송계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남자의 흰머리는 경험과 연륜의 면류관이고, 여자의 흰머리는 숨겨야할 결함인가? 젊은 여성이 일을 끝낸 주말 밤에 친구들과 파티를 하는 게 이상한가? 술 마시고 춤추고 노는 것이 총리 자격논란 사유가 되나?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은 업무보다 외적 조건으로 먼저 평가받는다. 외모와 옷차림, 가족과 사생활까지 사사건건 대중에 노출된다. 남자라면 관심거리도 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바지정장만을 입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영부인 시절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언론이 몰려와 소파에 앉은 그녀의 사진을 찍어댔는데, 다리를 모으고 있었는데도 선정적인 사진이 되었으며 일부는 속옷 광고에 사용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바지정장만을 고수하는 이유,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나 테레사 메이 전 영국 총리 같은 여성들이 중성적인 이미지를 지켜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말이다.

지난 5일 또 한명의 젊은 여성 정치인 리즈 트러스(47)가 영국 총리로 선출됐다. 그 역시 여자라서 따라붙는 가십과 스캔들을 앞으로 적잖이 견뎌야할 것이다. 우리가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인식하는 날이 언제나 올까?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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