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는 소련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재난을 불러왔다.”
2022년 8월 30일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타계했다. 이 소식에 전해지자 시앙 리강이란 중국의 시사평론가가 포털사이트 웨이보에 올린 논평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고르바초프 탓으로 돌렸다. 전쟁발발의 근본적 원인은 소련해체에서 찾아진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고르바초프 원죄론’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냉전종식이란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런 식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해체하지 않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변혁의 에너지에 휩쓸려 버렸다.’ 일각에서의 지적이다.
‘고르바초프는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무능한 인물로 마치 몽유병자 같이 개혁에 이끌려가다가 위기를 불러오고 수습도 못한 지도자다.’ 고르바초프의 적이라고 할까, 그런 세력의 비판으로 시진핑 체제 중국의 공식적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고르바초프는 한마디로 역사의 죄인이라는 것이 베이징의 입장으로 ‘소련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옛 소련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푸틴도 같은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과연 온당한 평가일까.
‘폭력과 기만에 기반을 둔 제국은 구할 가치가 없다. 고르바초프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진단이다.
‘이 같은 신념에 따라 고르바초프는 소련제국을 붕괴토록 했고 냉전을 종식시킴으로써 수억의 인류에게 자유를 안겨주었다. 비극은 그 위대한 교훈이 망각되고 있고 일부 권위주의 독재 세력은 정반대의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공산주의가 지닌 두드러진 본질은 기만과 폭력이다. 그 본질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것은 프랑스에서 발간된 ‘공산주의 흑서(Le liver noir de communisme)'다. 프랑스 국립 학술연구센터가 소련공산당 10월 혁명 80주년을 맞아 출간한 이 책은 전 세계의 공산정권들이 대량학살 범죄를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미화하며 자행해온 사실을 파헤치고 있다.
공산주의 정권들의 살상 규모는 상상을 절하는 악마적 규모로 소련에서 2,000여만, 마오쩌둥 치하 중국에서 6,500여만, 북한에서 200여만(300여만 명의 계획된 아사자 제외)등 도합 1억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공산주의 흑서’는 밝히고 있다.(이 수치는 새로운 학살진상들이 밝혀지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학살과정마다 공산체제가 동원한 것은 교묘한 술수와 선동선전의 기만전술이다. 이에 따라 자유의지와 정치적 행위능력을 상실한 공산치하의 인민들은 반인륜적 범죄를 사회주의 승리를 위한 조치로 받아들이기기까지 했다.
이처럼 폭력과 공포, 기만에 기반 한 공산체제는 어떤 모양으로 무너질까. ‘민중봉기에 따른 대규모 유혈사태나 전쟁 등 거대한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후 구 동구권에는 반공 봉기와 자유화 운동이 번져갔고 결국 소련제국도 해체됐다. 세계사적, 아니 어찌 보면 이 문명사적 대변혁이 당초 기우와 달리 루마니아 등을 예외로 하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떻게 그런 기적이 가능했나.
1989년 고르바초프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 전통적인 ‘러시아 딜레마’라고 할까, 제국수호에 나서느냐 자유를 허용하느냐 양자 중 선택의 기로를 맞이한 것이다.
개혁의 지도자로 알려졌던 과거 러시아의 통치자들은 이런 위기에서 예외 없이 제국수호를 선택했다. 그 한 예가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개혁에 나섰던 흐루시초프다. 1956년 헝가리 반공 민중봉기 사태가 발생하자 탱크를 동원해 진압에 나선 것이다.
1989년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전통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자’로서 폭력, 그러니까 자유를 갈망하는 동구국가들에 대한 무력동원을 자제한 것이다. ‘폭력과 기만에 기반을 둔 제국은 구할 가치가 없다’는 평소 신념을 따른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가정이지만 고르바초프가 군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 왔을까. 소련제국의 수명은 10년, 혹은 20년 연장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동서냉전은 더욱 심화되면서 자칫 열전(熱戰)으로 비화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그러니까 소련이라는 폭력적인 체제의 안락사를(본의는 아닐지 모르지만)유도함으로써 자칫 있을 수도 있는 대유혈 참사로부터 인류를 구한 것이다.
여기서 문득 한 생각이 스친다. 중국판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적폐가 쌓여간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애국주의 선전선동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들이 하나 둘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일고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이다.
부동산 버블 붕괴, 지방정부의 재정위기, 20%가 넘는 청년 실업률, 대기오염, 심각한 물 부족사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 그리고 미국과의 대립심화에 따른 스트레스가중 등의 사태가 겹쳐지면서 최근 들어 사회 불안은 비등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쌓이고 쌓인 공산당의 적폐가 일시에 폭발할 때 어떤 후과가 따를까. 천안문 사태를 능가하는 대유혈참사, 아니면 대만침공을 통한….
왠지 중국판 고르바초프가 절실히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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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