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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일지: 산티아고, 서울, 실리콘밸리

2022-08-30 (화) 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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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모르고 걷기로 마음먹었다. 15년 전 나는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영국의 혹독한 겨울을 나며 정신을 못 차리던 나는 2008년 3월, 부활절 방학을 맞이했다. 삼시세끼를 주던 기숙사에서도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4주간 뭘 할까? 빠듯한 용돈을 쪼개 의미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누가 스페인에 가면 순례길이 있다고 했다. 알베르게라 불리는 숙소가 중간중간에 있어 숙박비도 하루 몇 유로면 된다고 그랬다. 정말? 솔깃했다.

그래, 4주 동안 마냥 걸어봐야겠다. 마음을 정하고 발목 없는 등산화부터 한 켤레 샀다. 신발까지 사자 수업을 들으면서도 순례길이 떠올랐다. 부활절이 다가왔다. 나는 저가항공을 타고 프랑스 남부로 날아갔다. 4주 안에 800킬로를 걸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마음은 비장했다. 짧은 시간에 목적지까지 가려다보니 탈도 났다. 발목을 덮지 않는 신발은 다리에 무리를 줬고 진통제까지 먹으며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었다. 전투하듯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어라? 산티아고를 걸었지만 내 영혼의 크기는 커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벅찬 나날이 계속됐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버지를 잃었다. 살아계실 때는 그리도 그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다. 막상 아버지의 작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게 되니 매일 아침이 무겁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노력은 철저히 내 몫으로 남았다. 다시 산티아고길이 걷고 싶어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달 시간을 내기는 무리였다.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점심, 회사 근처에서 즉석떡볶이를 볶다가 더 이상 순례를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냈다. 스페인에 가지 못한다면 지금, 여기, 서울을 산티아고로 만들 수도 있잖아? 항상 떠오르는 태양처럼 매일 다니는 길을 산티아고로 생각하면 되잖아? 다음날부터 편도 10킬로 되는 길을 걸어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시도를 ‘일상이 산티아고’라 이름 붙였다.

15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매일 단상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먼지 쌓은 노트를 펼쳤다. 혈기 넘치는 24세 젊은이는 묻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세계는 내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말이다. 노트를 덮으며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결국 아침마다 혼자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에 나를 맡기고 글로 정리하는 일이 버릇이 됐다. 나는 매일 15년 전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한다. 강산이 1.5번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내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부끄럽다. 그게 나의 본질이라면, 이제 나는 나를 받아들여야겠다. 꼭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딛고선 자리와 숨쉬는 순간을 사랑하려 애쓰면 지금, 여기도 산티아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티아고를 향한 걸음은 서울에서 일단락됐지만 머잖아 실리콘밸리로 이어졌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다시 걸을 채비를 했다. 미국생활 1년이 지나고 마침내 베이 지역을 일주할 용기를 냈다. 100마일, 즉 160킬로미터를 일주일 동안 걸었다. 프로젝트명은 ‘걸어서 실리콘밸리’였다.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삶은 계속될 것이기에, 환희에 찬 달리기보다는 차분함을 유지한 걷기가 나답다고 생각한다. 가장이 됐지만 어쩐 일인지 아직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나다움을 놓고 싶지 않다. 철들려면 멀었다.

<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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