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삼년 반 전의 일이다.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로 거국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에 무려 3,600여명의 경제전문가들이 서명했다. 서명인들 가운데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15명의 인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 중 절반이상이 공화당 행정부 출신이었다. 이 같은 초당적 협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한 목소리로 반대했던 공화당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이름과 달리 기후변화에 관한 법안이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행동을 취하게 되었지만 공개서한의 연대 서명자들이 요구했던 조치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 공개서한에 이름을 올린 경제전문가들은 기후변화 경감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개인과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하며 그것이 ‘건전한 경제원칙’이 요구하는 치료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회의 승인을 얻어낸 I.R.A.는 탄소세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배출가스 거래제도 담겨있지 않다. 대신 I.R.A.는 클린 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재생에너지에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원전을 계속 가동하며 전기차 구입자와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일반가정에 인센티브를 준다.
그렇다면 탄소세 부과안은 어떻게 된 걸까.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은 배출가스세 경제학에 정통하다. 사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현 위원장인 세실리아 라우스 또한 앞서 말한 공개서한의 서명자다. 필자 역시 로빈 웰스와 공동으로 편찬한 경제입문 교재에 탄소세의 논리를 자세히 서술했다. 그러나 서한이 공개된 후 몇 개월 뒤 필자는 트위터 토론을 통해 온통 탄소세에 초점을 맞추는 “탄소세 순수주의는 의심스런 경제 논리이자 불순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실제로 민주당은 탄소세 경로를 택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 가지 대답은 탄소세가 여러 다른 정책안에 비해 경제적 측면에서 우월성을 지닌다는 주장의 근거가 예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탄소세 아이디어 자체가 사용가능한 복수의 테크놀로지가 주어질 것이라는 확실치 않은 가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경비가 지금 수준이라면, 건물의 단열설비 개선과 같은 기후 경감 접근법과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해 탄소세는 배출가스를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줄이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탄소세는 신기술 개발에 올바른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실 제대로 된 장려책은 유망한 분야를 가려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한물 간 얘기다. 기본적으로 이 논쟁의 핵심 논점은 시장에 맡기는 것 이외에 다른 의도된 산업정책을 마련해야하느냐이다. 그런데 산업정책의 기술적인 면은 정부의 소모적인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용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으로 가속화된 재생 에너지 가격의 파격적 축소는 탄소 저배출 기술이 아직 유아단계인 상황에서 탄소세에 정면으로 배치되거나, 추가되어야 할 산업책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한다.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넘어 탄소세를 기후정책의 골자로 만드는데 반대하는 정치적 논쟁 또한 드세기 그지없다. 경제전문가들의 공개서한은 ‘세금 인상’과 ‘큰 정부’라는 탄소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납세자에게 돌려준다는 약속으로 중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의 크기에 관한 정치적 논쟁을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건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정부가 추가 세수로 무엇을 하건 보수의자들은 세금인상에 가차 없는 흑색선전을 퍼부을 것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간과했다.
사람들은 소비자이자 납세자일 뿐 아니라 근로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감소 정책은 화석연료 산업의 일자리를 줄이게 된다. 여기엔 둘러 갈 우회로가 없다. 정치적으로 가능한 해법은 기후정책이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을만한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저 “시장경제가 실직한 화석연료업계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줄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태양광 설치, 기존건물 개량 등과 관련한 새로운 분야에서의 취업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한다.
2019년의 트위터 토론에서 필자는 “재앙을 막기 위해 통과된 법안은 다양한 이익집단에 구체적인 선물을 제공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수십 년간 이어진 헛수고 끝에 드디어 기후변화에 관한 중요한 조치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좋은 정책 아이디어라 해도 실제로 입법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탄소세 옹호론자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클린 에너지 정책과 다소 거리가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문가들은 I.R.A.가 배출가스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탄소세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얘긴가? 전혀 그렇지 않다. 탄소배출량 제한에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여전히 좋은 계획이다. 경제가 탄소를 제거하고 그린에너지업계가 더욱 강력한 이익집단을 형성한다면 탄소세가 정치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채찍이 아닌 당근, 세금이 아닌 보조금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