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도로 결정한 정책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의도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사악하다고도 할 정도다. 그런데 결과는 좋게 나왔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선(善)으로부터는 선만이, 악(惡)으로부터는 악만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종종 그 반대가 진실이다.”
이를 메피스토 법칙(Mephisto law)이라고 하던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창조해 내는 힘의 일부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데서 나온 말로, 악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 의외의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망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수십만의 사상자에, 수백만의 전쟁난민이 발생한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말이다. 그 참상에 놀라 한동안 신문의 헤드라인은 온통 우크라이나 전쟁소식으로 장식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크라이나 피로증세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관심도 시들해지고 있다.
침공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전쟁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전히 비참하기만 하다. 그 가운데서도 그러나 한 가닥 서광이 비치고 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말 그대로 푸틴의 망상에서 빚어진 침공이다. 그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황은 푸틴의 의도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확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서방측 입장에서 보면 메피스토법칙이 작동되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먼저 전상자 수를 보자. 러시아군의 무차별 화력 퍼붓기 식 공격에 우크라이나 측의 피해가 여간 큰 게 아니다. 그러나 더 막대한 병력손실을 겪고 있는 것은 러시아 측이다. 전상자 수만 최소한 8만에 이른다는 것이 서방측의 추산으로 과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점령 10년 동안 입은 손실을 훨씬 웃돌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다. 에너지를 통한 서방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뇌사상태’에 있던 서방 나토동맹을 소생, 강화시켰다. 스웨덴과 핀란드. 수 백 년 동안 중립을 고수해오던 이 두 나라의 나토가입 보너스까지 제공하면서.
동시에 소련 붕괴 이후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던 러시아 경제는 좌초 직전의 상황을 맞게 됐다. 러시아는 3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푸틴의 망상의 대가다. 자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푸틴의 주장 자체가 망상이었다. 그 우크라이나를 침공 3주면 점령할 것이라는 것도 오만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망상에서 망상으로’ 비롯된 푸틴의 침공, 그 본래 의도와 정반대로 나타난 또 다른 중차대한 결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우크라이나의 재탄생이다.
2012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12%만이 나토가입을 지지했다. 침공직전인 2022년 1월의 여론조사는 64%가 지지하는 것으로 밝혔다.(현재는 이보다 훨씬 많은 절대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도 그렇다. 그들 중 상당수는 친 러시아 성향이었다. 침공이후에는 거의 다가 반러시아로 돌아섰다. 거기다가 우크라이나의 EU(유럽연합)가입은 시간문제가 됐다.
러시아의 침공은 푸틴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진정한 의미의 우크라이나 독립전쟁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이 러시아의 침공에 처절히 저항하고 나섰다. 이를 통해 확고히 다져지고 있는 것은 ‘한 민족국가로서, 또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우크라이나’란 나라의 정체성이다.
서방을 분열시키고 나토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또 다른 이유다. 결과는 역시 정반대가 됐다. 서방은 더 결속되고 나토의 외연은 더 넓어졌다.
“푸틴의 우크라이나침공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제 2의, 제 3의 푸틴이 계속 등장할 수도 있다.” 적지 않은 분석가들이 보인 우려다.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이 된 시점에서 그러나 정반대 시각의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졸전에 졸전을 거듭,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다가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러시아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이런 푸틴 러시아의 모습은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할까. 오히려 시진핑의 중국을 비롯한 일부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침공본능을 억누르고 있다는 거다.
침공 6개월을 맞은 시점에서 그러면 러시아는 무엇을 얻었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지역에서 부동산을 조금 늘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대가가 엄청나다. 전사자만 최소 수천(일부의 추정은 2만)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한 마디로 기진맥진상태로, 러시아군은 작전능력을 상실한 정점을 맞으면서 우크라이나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러시아군의 피해는 계속 커진다. 이와 함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의 망상이 빚은 참상의 진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푸틴은 무리수를 연발한다. 러시아를 실제 통치하는 엘리트 그룹의 고민은 깊어진다. 그러다가 결국 ‘푸틴 손절(損切)’만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싱크 탱크 아메리칸 포린 폴리시 카운슬의 진단이다.
코너에 몰린 푸틴. 그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
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