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소장 스톡데일(Stockdale)은 베트남 전쟁 때 전투폭격기 조종사로 싸우다 월맹군의 포로로 잡혔다. 그는 하노이 호텔이라 불렸던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에서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며 무수한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맞아 석방될 거라는 낙관적 희망을 품었던 그의 많은 부하 포로들은 희망이 번번이 물거품이 되자 상심하여 죽어갔다. 하지만 스톡데일은 하루하루의 삶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살아남은 후 미 부통령 후보까지 되었던 것이다.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 오뚝이나 용수철처럼 되라는 소리다. 오뚝이는 아래 부위를 무겁게 만들어 넘어지게 해도 곧 바로 일어서고, 용수철은 잡아당겼다 놓으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원래 물리학에서 외부의 힘이 사라졌을 때 제 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탄력성이라 불렀다. 심리학에서는 우리의 삶에 위기나 역경이 닥쳤을 때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의미한다.
물리적 탄력성과 심리적 탄력성은 다르다. 물리적 탄력성은 오뚝이나 용수철 같이 외부 힘에 따라 발생하는 수동적 소극적 반응인 반면 심리적 탄력성은 위기나 역경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심리작용이다.
물리적 탄력성은 굳이 외부의 힘과 다툴 필요가 없다. 외부 힘이 곧 없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자연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삶의 역경이나 위기는 다르다. 심리적 상처와 갈등은 우리 뇌의 편도체를 예민하게 만들어 아주 오래 간다. 좌절의 상처를 여러 번 겪으면 현재의 삶을 살면서도 뇌는 과거에 매달려있기 때문에 적극적 능동적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정서적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환자)과 오래 관계를 맺고 지내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경험했다. 환자들에게 약물, 상담, 운동도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게 회복 탄력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거울에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면 보통 나쁜 점, 잘못한 일만 보인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좋은 점, 잘한 일이 더 많다. 자신과의 관계형성이 다른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실패해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관대해야만 되지만 동시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예전의 심리치료는 환자의 부정적 감정과 사고를 고쳐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 많이 이용하는 긍정심리 치료는 삶의 고난 중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점, 장점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내 역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이다. 현재의 상황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힘과 여유를 길러주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다. 운동으로 신체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회복탄력성도 노력과 훈련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힘이 커진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붙여서도 안된다. 오뚝이나 용수철이 한번 부러지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 전환점(Tipping Point)을 맞이하게 된다. 외부의 힘에 저항을 하는 과정에 조그만 자극들이 서서히 가해지면 어느 한 순간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다. 심리적 고난의 시기에도 좋지 않은 작은 요인들이 계속 발생하면 뇌와 심장이 망가져 더 이상 인간으로서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상당수의 스톡데일 부하들이 한두 번의 좌절로 죽어가진 않았겠지만 심리적 탄력성에 필요한 끈기가 부족했던 듯싶다. 죽은 부하들은 물리적 용수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톡데일은 지금 여기의 삶을 철저히 살며 좌절을 도전으로 여기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심리적 용수철을 가진 사람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잠재력이 터져 나온다. 이 잠재력과 더불어 자신의 노력을 더 하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져 자살충동, 마약중독을 극복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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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