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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의 핵심, 반도체 동맹

2022-08-11 (목)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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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이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가입 여부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핵심자원인 반도체의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경제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미국의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강국인 한국·일본·대만 등에 반도체 동맹 결성을 제안하면서 각국 정부에 8월 말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일본·대만과 달리 우리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중국의 보복 가능성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마크 류 TSMC 회장을 만난 후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끊고 기후변화 협상을 중단하는 등 보복 수위를 연일 높이고 미국도 ‘무책임한 조치’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당시 중국에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응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 동맹의 경우 중국 역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보복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반도체의 경우 지금은 수요자보다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중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를 포함해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을 제재할 경우 반도체 수급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국운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7월27일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와 과학법’은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포함한 연관된 첨단산업 역량 제고를 위해 2,800억 달러 규모의 연방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인공지능과 연관 첨단산업과 기초과학 연구, 인력 양성, 인프라 투자에 향후 2023~2027년 2,000억 달러를 투입하고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527억 달러를 지원하며 ‘반도체 촉진법’을 통해 반도체 시설 및 장비 투자에 10년간 240억 달러 규모로 25% 세액공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지원법 보조금 및 반도체촉진법 세액공제 혜택을 받은 기업들은 중국 및 요주의 국가 내 반도체 제조 역량 확대 및 신설 투자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미국은 지난해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의 대중국 수출 금지를 요청했고 최근에는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내 낸드플래시를 제조하는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2025년께 글로벌 분업 구조의 전환기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중 간 신냉전 전개에 따른 글로벌 산업지형 격변기를 전략산업 도약의 기회 요인으로 활용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위축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메모리 분야를 포함한 반도체 초강국으로 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래 수요 산업에 초점을 맞춘 반도체 전략 수립과 지원 정책의 고도화가 시급하다. 최근 발의된 ‘K칩스법’의 조속한 입법은 물론 반도체 동맹에 보다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메이저리그에서 소외될 경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을 ‘칩4’로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칩 생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협력, 인재 양성과 교류 등 큰 차원의 협력을 의미하고 있다. 반도체가 단순히 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설계능력·제조장비 등 여러 요소로 구성된 글로벌 공급망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분야에 특화된 국가들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동맹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한다. 우리의 반도체 동맹 가입 목적이 특정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나가야 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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