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애완견 키우는 가정이 무척 많다. 사람 대신 애완견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오해와 불신과 갈등으로 상처 입을 확률이 높지만, 강아지들은 언제나 불평 한마디 없이 주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때로는 친구보다, 반려자보다, 자식보다 낫다고들 한다.
우리 집에도 요키와 말티스가 섞인 검은 강아지가 한 마리가 있는데 이 녀석 하나를 놓고 애환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끼리의 대화보다는 이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가 훨씬 많으니, 머잖아 얘가 떠나고 나면 집안 분위기가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그런데 이처럼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미국에서 최근 쇼킹한 뉴스가 전해졌다. 버지니아 주의 개 농장에서 학대당하던 비글 4,000여 마리가 지난 달 연방 농무부에 의해 구출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뉴스는 여러 가지 정황이 굉장히 이상하다. 한꺼번에 무려 4,000마리, 그것도 그냥 개들이 아니라 모두 비글(Beagle)이고, 동물보호단체가 아닌 연방 농무부(USDA)가 구출했다는 사실이 모두 일반적이지 않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도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컴벌랜드에 있는 ‘엔비고’(Envigo) 사육장에서 2년 전부터 수차례에 걸쳐 동물복지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2021년 약 300마리의 강아지가 ‘원인불명’으로 사망한 것이 농무부 검사에서 발견됐고, 다음번 검열에서는 196마리를 마취도 없이 심장에 주사를 꽂아 안락사 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에도 검사 때마다 수많은 강아지들이 환기도 안되는 시설에서 케이지에 갇힌 채 쓰레기와 해충, 자기 오물더미의 역겨운 환경 속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간 정황이 적발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구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나서서 엔비고의 비글 사육면허를 정지하라고 고발했고, 농무부는 지난 5월18일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가장 심한 고통 속에 있는 145마리의 성견과 강아지를 구출했다. 그리고 7월초 연방 법무부는 이 농장의 비글 4,000마리를 모두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개시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마쳐야하는 이 전무후무한 구조작전은 현재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전담하고 있는데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전국의 수백개 구조단체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매주 300~500마리 구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각각 수십명의 자원봉사자와 수의사들, 밴 운전자들이 필요하다. 한 마리씩 건강검진을 한 후 셸터나 재활기관으로 보내야하고, 거기서도 백신, 구충제, 마이크로칩, 중성화 시술을 마친 후에야 포스터 홈이나 일반가정에 입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견딜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비글들의 사진, 동영상과 함께 8월6일까지 1,124마리가 구조됐음이 공지돼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많은 비글강아지들은 어떤 일로 한꺼번에 사육되었을까? 관련 뉴스와 자료들을 통해 내막을 알게 되면서 더 놀라운 사실들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 강아지들은 애완견이 아니라 제약회사와 바이오회사들의 실험과 연구를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실험용 동물이다. 한번도 땅을 밟거나 햇빛을 보거나 다른 개들과 놀아보지도 못한 채 평생 케이지에 갇혀 살다가 실험대상이 되어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짖지 못하도록 성대제거수술까지 받는 이 개들은 각종 의약품과 세제, 살충제 등 수많은 화학물질을 비롯해 살모넬라, 광견병 등 치사량의 병균을 주입받는 고통스런 실험을 당한 후 폐기처분된다. 미국에서 이 모든 것은 합법적이고, 실험용 동물사육에 관해서는 규제가 거의 없거나 느슨하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사육장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비글인가? 그 이유가 너무 슬프다. 온순하고, 착하고, 몸집 사이즈가 딱 좋기 때문이란다. 그건 바로 이상적인 애완견의 조건 아닌가?
비글이 실험동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유타대학이었다. 비글이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대학은 본격적인 사육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구입한 69마리에서 1960년까지 671마리의 강아지를 번식해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농축 플루토늄을 주입하는 방사능 독성실험에 사용돼 즉시로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경과를 지켜보느라 안락사조차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이후 ‘비글 프로젝트’란 이름의 동물실험은 미 전국의 대학 실험실로 퍼져나갔고 무려 7,000마리의 강아지가 방사능의 폐해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숨져갔다.
문제는 오늘날 의학 발달로 갖가지 신약이 쏟아져 나오고 실험도 많기 때문에 희생되는 동물의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농무부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한해 미국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은 79만7,546마리, 이 가운데 개는 5만8,511마리(13.6%)이며 나머지는 쥐, 토끼, 햄스터, 기니피그, 돼지 등이다.
여기에 차마 쓸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동물실험의 내용들을 읽자 구토가 올라왔고, 구출 동영상들을 보는 동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따지고 보면 동물실험의 가해자는 우리다.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개고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나도 개고기는 반대한다. 하지만 개를 잡아먹는 일과 독성물질을 주입시켜 내장까지 녹아버리는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일, 어느 것이 더 나쁜가? 문명사회에서 이런 일이 합법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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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