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아침부터 쉴 틈 없이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정작 나의 To-do 리스트에 밑줄 그은 것은 하나도 없고, 열심히 오물조물 씹고는 있는데 묘하게 음식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 그런 날 말이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드라이브를 하러 나섰는데 신호등이 계속해서 빨간 불로 바뀐다거나, 간신히 카페에 들어가 좋아하는 머핀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시키려고보니 조금 전까지 분명히 있었던 “내” 마지막 머핀이 앞 손님에게로 가는 것을 목격하는 그런 날. 한여름에 갑자기 우박이 내리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그런 날이 있다. 적당히 서운해도 될 일들이 송곳이 되어 깊숙하게 나를 찌르고 내 모든 기운을 뺀다.
사실 나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숨도 못 쉴 만큼 바쁜 스케줄에 컨디션은 바닥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장으로 온 한국은 찜통처럼 덥다. 작고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몇 달에 걸쳐 열심히 준비한 행사에도 악착같이 우리 곁에 붙어 떠나질 않는 코로나 때문에 하나둘씩 변수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뻐하기로 한다. 톨스토이가 남긴 말처럼, 나 스스로 기뻐하기로 이미 마음먹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기뻐하느냐 인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일부러 억지웃음을 지어보기도 하고, 솟아나는 답답함을 참아보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기도 하지만 결국 기분전환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오래 전 봤던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는 타임루프에 빠진 주인공 폴이 나오는데, 감옥에 갇힌 듯 같은 하루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그가 수많은 감정의 변화와 좌절을 반복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결정한 것은 바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폴이 본인의 지루한 하루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가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한다.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는 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을 붙들고 사는 것을 멈추고,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잠깐의 상상으로 내 안의 무수한 감정들을 날려 보내본다. 나에게 조금 덜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연습, 곧 기뻐하기로 마음먹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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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