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의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개인의 특성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나의 행동을 인식할 때는 상황의 영향은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의 문제점은 무시해 버리기 일쑤다. 한 마디로 자기가 잘못하면 ‘상황 탓’이고 남이 잘못하면 ‘그 사람의 성격과 능력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6월 하순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후 계속 급락하더니 급기야 30%선까지 무너졌다. 윤 대통령이 직면한 위기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심각한 수준의 ‘귀인오류’라 할 수 있다.
출근길 약식 일문일답 자리에서 경제위기 진단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가 내놓은 답변은 “세계적인 경제상황 때문에 근본해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상황 탓으로 돌리는 ‘귀인오류’가 읽힌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사와 관련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자신은 훌륭한 인물들을 골랐는데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투다. 만취운전과 논문 표절 및 가로채기, 자녀 입시 컨설팅 등 온갖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는 자리에서도 “야당과 언론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았다”면서 모든 것을 남 탓으로만 돌렸다. 인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엇이 대통령의 문제점인지 묻는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태도’와 ‘무능’이었다. 그의 태도는 너무 독선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외부상황과 남 탓 혹은 전 정권 탓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국민들의 눈에 독단과 무능으로 비취지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여당 인사들 또한 문재인 정권의 경제적 유산 탓만 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것은 문재인 정권이 국민들을 갈라치기 했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그 대통령에 그 여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000명 이상의 CEO들과 수천 명의 중역들을 대상으로 미시간대 제임스 웨스트팔 교수가 실시한 연구는 왜 권력자들의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지기 쉬운지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가 리더를 망치는 두 가지 요인으로 밝혀낸 것은 ‘아첨’과 ‘동조’였다. 특히 CEO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를 향한 아첨과 동조는 더 많아졌다.
웨스트팔 교수는 이런 아첨과 동조가 인간의 기본적 속성인 ‘귀인오류’를 한층 더 강화시켜 리더가 모든 문제를 자신의 잘못보다는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회적 지위에 관한한 대통령만큼 높은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역으로 대통령만큼 ‘귀인오류’에 취약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몇 년 전 한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의 책에서 ‘귀인오류’와 관련,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그 전문의는 계속 고시에 떨어지면서도 여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서 ‘귀인오류’가 특히 많이 발견된다고 진단했다. 이런 사람은 99%의 다른 실패자들은 실력 부족 때문에 떨어진 것이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애써 여기면서 고시에 목을 매는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그의 이 같은 ‘정신승리’의 경험과, 평생을 상명하복의 문화 속에서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단죄해온 이력이 대통령으로 지금 그가 드러내고 있는 ‘귀인오류’ 형성의 토양이 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심각한 ‘귀인오류’는 반성과 개선의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든다. 장삼이사들의 ‘귀인오류’는 기껏해야 그 개인의 평판과 실패에 그치지만 지도자 혹은 책임자의 그것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직을 망치고 무수한 개인들의 삶에 부정적 여파를 미치게 된다.
윤 대통령은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책과 반성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두루두루 다시 살펴보고 그것이 태도가 됐든 인사가 됐든 아니면 정책이 됐든 잘못된 것은 고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쓴 소리와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임기가 아직 4년 9개월이나 남았다지만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게 고무줄이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 늘어지게 되면 탄력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국정 동력도 마찬가지다. 한번 힘을 상실하게 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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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