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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칼럼] 소수정권 vs 앙시앵레짐, 가치 전쟁이다

2022-07-21 (목)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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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교체됐는데 편파 방송은 왜 그대로인가요?”

먼저 “기득권 경영진과 노조 때문”이라는 답을 많이 듣는다. 한 전문가의 진단이 귀에 쏙 들어왔다. “지상파 방송과 종편들이 여전히 전 정부 때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방통위는 규제·감독권과 재승인·재허가권을 갖고 있어 방송사의 목숨 줄을 쥔 ‘제왕’이나 다름없다. 현재 방통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한상혁 위원장 등 구 여권 추천 위원 3명과 국민의힘 추천 위원 2명으로 구성돼있다. ‘정치 편향’ 논란을 빚어온 한 위원장은 버티기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했던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과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등도 스크럼을 짠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창룡 경찰청장이 이끄는 경찰이 최근 대통령 결재도 받지 않은 채 치안감 인사 초안을 공개해버리는 ‘국기 문란’ 사태까지 벌어졌다.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잇단 저항이다.


17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은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21대 후반기 국회는 26일째 공백 상태이다. 새 정부가 최근 발표한 법인세율 인하와 규제 완화 정책들은 모두 ‘헛공약’이 될 판이다. 입법권을 쥔 민주당이 ‘대기업·부자 특혜’라며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른 경제 위기 태풍이 밀려오고 있지만 정치권은 오불관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와 글로벌 악재 등이 겹치면서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와 생산·소비·투자 부진의 3저(低) 위기로 치닫고 있다.

새 정부가 ‘3중 장애물’을 넘고 전진하려면 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내리막길이다. 알앤써치가 18~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7.6%로 부정 평가(47.9%)보다도 적었다.

소수 정권인 윤석열 정부가 삼각파고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초반부터 깊은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한 이명박 정부도 출범 3개월 만에 광우병 사태로 난파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이중 권력’ 체제에서 행정 권력을 가진 윤석열 정권과 의회 권력을 차지한 ‘문재명 세력’과의 대결은 결국 가치 전쟁이다. 국민들이 5년 만에 정권을 바꾼 것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공정 파괴를 심판한 것이다. 수(數)에서 밀리는 윤석열 정권은 도덕성과 공정·상식의 가치에서 비교 우위를 차지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국정 운영과 개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가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와 말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의 이유로 인사 문제를 꼽은 응답(21%)이 가장 많았다. 당초 남성 위주의 조각을 했다가 “시야가 좁았다”면서 여성 장관 2명을 내정한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박순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면허 취소 기준을 넘는 만취 운전과 논문 중복 게재 의혹 등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관사 테크 갭투자’ 등 여러 의혹에 휩싸였다. 새 정부가 심기일전하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걸러내고 품격과 자질을 갖춘 새 인물들을 기용해야 한다. 여당도 통합과 성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 지도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 ‘도어스테핑’을 갖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소통 강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화법은 오해와 역풍을 부를 수 있다. 가령 ‘검찰 편중 인사’ 지적에 대해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도배하지 않았나”라고 대답하는 것은 ‘내로남불’로 비칠 수 있다. 정권은 결국 일과 결과로 평가받는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민들의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등 국정 화두 던지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더 나아가 복합 위기의 원인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국민과 여야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평소 좋아하는 약주 마시기를 자제하고 깊이 공부해야 한다. 최고지도자가 불굴의 뚝심으로 열정을 기울여야 위기의 강을 건너고 성장 동력을 재점화할 수 있다.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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