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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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버스데이’

2022-07-12 (화)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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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 뭔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해피 버스데이’ 오탁번

‘왔데이’‘뭔데이’‘버스데이!’ 토착 몽골로이드 경상도 할매와 서방 코카소이드 아재가 만나 서로 딴소리하는데 장단이 맞는다. 불통이 소통이 되는 기적이 연출된다. 경상도 사투리의 어미 ‘-데이’와 앵글로색슨어계의 명사 ‘데이’가 의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음가적 상동의 세계에서 만나 서로 다른 버스데이를 노래하며 행복한 코스모폴리탄의 세계로 떠나간다. 웃음이 배어나오는 동화적 설정이다. 하지만 저 불통의 아전인수가 유쾌한 것은 둘 다 승객이기 때문이다. 만약 운전기사마저 승객들의 목적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데려간다면 저 여정의 끝은 노랫말처럼 해피하지 않을 것이다. 반칠환 [시인]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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