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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관한 진실과 거짓

2022-07-1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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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상식적인 대답은 정자가 난자를 만났을 때일 것이다. 수정이 된 순간부터 인간의 세포는 1주일마다 2배로 늘어나며 40주가 되면(10의 40제곱) 1조개에 달한 후 산모의 몸밖으로 나와 독립된 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을 하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낙태권 옹호론자들이다. 인간의 생명이 수정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주장하기는 힘들어진다. 태아는 여성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잠재적 독립적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한 때 태아였다.

낙태는 인위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끊는 것이다. 태아는 여성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산모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태아도 잠재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생명을 해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1973년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의 낙태권은 연방 헌법이 보호하는 권리라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모든 하위법을 무효화 시켰다. 태아의 생명은 산모라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지난 50년간 이를 뒤집기 위한 풀뿌리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이들은 낙태 금지를 찬성하는 정치인을 주의회로 보내 낙태 요건을 엄격히 하는 법을 제정했고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대법원 후보를 물색해 이들을 연방 대법관 자리에 앉히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가 최근 나온 ‘돕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판결이다. 이 판결문을 쓴 새뮤얼 앨리토는 연방 헌법 어디에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조항은 없으며 따라서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헌법에 낙태권이 없다는 사실은 ‘로우’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내세운 것은 수정 헌법 14조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생명과 자유, 재산을 빼앗길 수 없다’는 조항이다. 이들은 여기서 자유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다시 여기에 여성의 신체 결정권을 포함시켰다.

이는 헌법의 해석이 아니라 헌법을 빙자한 법의 제정이라는 ‘오리지널리스트’ 법조인들의 비판을 받아왔는데 그 중 대표적 인물의 하나가 앨리토다. ‘오리지널리스트’란 연방 헌법은 후세 판사들의 자의가 아니라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오리지널 의사에 따라 해석돼야 한다고 믿는 보수파 법조인을 일컫는다.

일부 사람들은 이번 판결로 연방 대법원이 모든 낙태를 불법화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낙태를 불법화한 것이 아니라 헌법이 낙태에 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을 이유로 낙태 금지를 불법화할 수 없으며 이 문제는 연방 또는 주의회가 결정할 사항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50개주는 주대로, 연방 의회는 의회대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낙태를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법을 만들 수 있다.

같은 태아라 하더라도 한 개의 수정란에 불과한 존재와 태어나기 직전의 태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대다수 미국인들은 태아 기간을 3등분 해 첫 1/3분기에 해당하는 15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지만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체외에서 독자 생존이 가능한 마지막 10여주는 불허하는 것을 지지한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7%는 임신 1/3분기내 낙태 허용을 지지하지만 2/3분기로 들어서면 이 숫자는 36%로 줄어들며 3/3분기에는 20%로 급감한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낙태의 79%는 임신 9주 안에, 93%는 13주 안에 일어난다.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유럽도 대부분의 경우 임신 18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로우 대 웨이드’ 판결대로 연방 헌법이 낙태권을 보장하고 있다면 여성의 낙태권을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위헌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태어나기 직전의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도 허용돼야 한다. 보수적 종교 단체는 물론이고 일반의 상식으로도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50개 주는 인종 구성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다. 낙태와 같이 전면 허용과 전면 금지까지 극단적인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한쪽 주장만을 옹호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 쪽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의회에 대표자를 보내 타협안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다.

물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불이익을 받는 것은 주로 여성이고 이를 끝낼 선택권을 박탈당한다는 것이 억울할 수 있겠지만 태아는 여성의 일부면서 잠재적 인간이란 양면성을 가진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낙태라는 문제를 의회라는 공론의 장에서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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