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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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무생물도 사랑을 탄다

2022-07-11 (월) 김관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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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 길가에 어느 날부터인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서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홈리스가 필요해서 주차해 놓았으려니 여기며 지나다녔는데 그 차는 날이 갈수록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초라한 몰골로 변하더니 급기야는 차창 유리가 깨어지고 운전석 문이 일그러지는 등 하루가 다르게 처참한 모양으로 변했다. 문짝이 달아나고 시트가 뜯겨져 나간 어느 날 그 차는 사라졌다. 관계 부처에서 뒤늦게 폐차 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차종은 기억나지 않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그 차가 어째서 주인에게 버림을 받게 되었을까, 온갖 상상을 다 하면서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생명 없는 물체라도 주인에게 버려지면 볼품없이 망가지고 만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터넷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한국 농촌에 버려진 집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한때 아버지의 헛기침과 어머니의 도마소리로 아이들이 성장하며 꿈을 키웠을 집은 그들이 떠나자 흉물스러운 폐가로 변한 것이다. 공연히 마음이 짠했다.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자 이것저것 고장이 많이 난다고 딸 친구가 투덜거렸다. 집이 들을까 봐 이사 간다는 말도 조용조용했는데도 집이 알고 반란을 일으키는 모양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녀의 재미있는 발상에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보면 오히려 그녀가 곧 떠날 집이라고 손보아야 할 부분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곧 떠날 집이라고 정을 뗀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을 게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마치 모든 사물에도 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동조자쯤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다만, 생활 집기든 가구든 아니면 주변의 돌멩이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고 따듯한 눈길로 쓰다듬을 때 비로소 하나의 생명체처럼 빛이 나면서 제 구실을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버려진 승용차 역시 한때 준마처럼 달릴 수 있었던 건 임자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였을 것이다. 주택 역시 사는 사람이 가꾸는 대로 훈기가 돌며 집다운 집으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아늑한 공간이 되는 법이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건만 필요하면 취하고 필요 없다고 여기면 버리는 일은 인간만이 하는 짓이다. 사랑하고 보듬는 일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다.

<김관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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