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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용기있는 환자

2022-07-07 (목)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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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겁내지 않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용기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겁내지 않는다고 용기 있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이에 맞설 수 있는 힘, 또한 실패를 해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진정한 용기다.

세상에 알려진 용기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타인의 손에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정신과 의사를 찾는 환자도 용기있는 자 중의 하나다. 자존심을 접고 정신과 의사와 만났다는 낙인찍힐 두려움을 감수하고 찾아왔으니 말이다.

“죽을병도 아닌데 왜 지금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해.” 불만에 찬 약혼녀의 다그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을 한 달 앞둔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정신과 의사를 만나겠다니 하는 소리다. 환자는 결혼이 두렵고 불안하고 겁이 났다. 가끔 파혼할까도 생각해보았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직장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실수도 자주 했다. 기분이 우울해 사람 만나기도, 말하기도 싫었다. 어느 날 면도하다 거울에 비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이 심히 초라해 보였다. 모든 걸 포기해 버릴까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자 의사한테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근심, 걱정, 불안은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보편적 감정이며, 진실하고 의미 있는 삶의 추구는 불안, 고통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가 누구라는 자신의 영상(Self image and identity)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지만 큰 장애에 부딪치면 자신의 영상이 흐트러져 두렵고 불안해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외면하거나 피하거나 무시해버린다.

무슨 이유로든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의 몸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대응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생리작용에 의해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코티졸과 노올에피네프린이 자동적으로 분비된다. 심리적으로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진정시킨다. 지치고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대응이다. 이 3가지는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한다. 즉 우리 몸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반응은 치유의 한 스펙트럼 상에 놓여있다.

최근의 정신과 치료경향은 환자들에게 약물치료를 권장한다. 물론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뇌의 구조적, 기능적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이유다. 하지만 약이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면 심리치료가 중요하고, 운동 같은 긍정적 생활습관으로 이어져야 된다.

앞에 언급한 환자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상실한 듯싶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극복 방안을 찾아주어야 한다.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진정제와 항우울제, 그리고 증상이 너무 심해 회복이 느리면 인지능력을 높여주는 소량의 항정신제(도파민 계통)도 사용한다. 정신치료로는 환자의 사고, 감정, 행동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인지행동 치료가 좋다.

예전의 인지 행동 치료는 환자의 부정적 사고와 감정, 행동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다음 이들을 변화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지금의 마음챙김 인지치료(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와 수용 실행치료(Acceptance and Cognitive Therapy)는 환자의 생각, 느낌, 행위가 현실에 맞든 안 맞든 먼저 받아들인 뒤 왜 이런 경험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알아차리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회복 탄력성이란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환자에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높여주고, 희망이 없을 것 같아도 희망이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더불어 걷기나 뛰기 등 신체적 힘을 기르면 우울증세는 좋아진다. 그래서 직장일도 열심히 하고 정해진 날에 결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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