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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나토정상회의

2022-07-0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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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올랐다’. 이 뉴스가 전해진 게 한 달 여 전이었나. 한 주도 못가 프랑스 칸에서 또 다른 낭보가 전해졌다. 남우주연상, 감독상을 한국이 수상했다는 거다.

뭐 우연이겠지.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해본다. 나름 ‘국뽕’에 빠지지 않으려는 다짐(?)에서랄까. 그런데 또 다시 들려온 것이 임윤찬 소식이다. 18세의 천재적 한국인 피아노연주자가 나타나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린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우연이 겹친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건 필연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가. 한 국내 논객은 한국의 저력이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문화예술분야에서 한국의 세계선도 역할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드리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의가 끝났다. 이 32차 나토정상회의가 그렇다. 몇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주요 결정들이 내려졌다.

그 중요 결정의 하나가 오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가입이다. ‘러시아를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처음으로 ‘중국은 서방동맹의 이해와 안보,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고 명시한 새 전략개념을 채택한 것도 그렇다. 이와 함께 러시아인접 동유럽국가인 폴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등지의 미지상군 배치를 늘이는 동시에 나토의 신속배치군을 대폭 증강키로 하는(4만에서 30만으로) 결정도 내렸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중국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아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나토는 “우리의 가치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킬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한국, 일본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들과 중국의 도전을 막기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나토는 미-소 냉전의 산물이다. 그 나토가 북미와 유럽, 아시아를 잇는 가치동맹으로 확장, 재편된 셈으로 이번 나토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한국, 일본 등 미국의 아시아동맹국, 그리고 유럽이 연합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 등 독재세력 간의 가치 ‘냉전 시대’가 본격화 된 것이다.

이 나토정상회담에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참석했다. 나토 역사 73년 만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참가해 한미일 3각 정상회담에 이어 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덴마크 등 10여 개국과의 회담 등 나토 회원국-파트너 국 정상회의로 이어진 3박5일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반 러시아에, 반 중국노선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윤 대통령은 그 나토정상회의 참여해 ‘중국은 서방의 안보에 도전하고 있다’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공유했다. 뿐만이 아니라 틈만 나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연대를 강조했다.

이 윤석열 외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 외교가 나토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치와 규범으로 동맹의 지평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에서 ‘불나방처럼 미국에만 편승했다’는 호된 비판에 이르기까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의전미숙에, 외교성과는 없고 중국리스크만 커졌다는 거다. 신 냉전구도 속에 한국외교의 입지만 축소됐다는 비난을 하고 나선 것.

제대로 된 비판인가. 아니, 그 반대가 아닐까. 일부의 지적대로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토정상회의라는 다자외교의 틀에서 새삼 확인된 사실은 부쩍 커진 대한민국의 위상이고 격동의 국제상황에서 한국이 나가야할 길이다.

K-팝으로 대별되는 문화예술뿐이 아니다. 경제, 기술, 더 나가 군사적으로도 세계선도의 한 모퉁이를 담당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미정상회담의 첫 행사로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삼성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도 다름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역량을 보유한 ‘불가결한(indispensable)국가'로 대한민국이 발 돋음 했기 때문이다.

힘의 이동, 러시아와 중국의 도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국제사회는 이중삼중의 혼돈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 회복에 일익을 맡도록 한국을 끌어 들어야 한다는 포린 어페어스지의 지적에서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드러난다.

국제 사회가 맞이한 오늘의 혼돈상황은 G7체제로는 감당이 안 된다. 이 같은 진단과 함께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G12체제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기존의 G7에 한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나토와 EU(유럽연합)를 합세한 G12를 중심으로 서방은 더 늦기 전에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 회복 노력을 펼 때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입장에서는 한국만큼 군사, 경제 역량을 갖춘 파트너를 찾기 힘들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든 지 이미 오래다. 한국의 방산도 날로 발전, 머지않아 세계 3~4위권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BTS로 대별되는 한국의 소프트웨어도 큰 자산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글로벌 중추국가의 일원인 것이다. 전략적모호성 운운하면서 중국 눈치나 살피는 외교는 이제 그만,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가치연대’ 외교를 통해 시진핑과 북한의 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외교를 펼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나토와의 협력과 한국의 역할을 당당히 해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정상회담에서 한 선언이다.

뭔가의 느낌이 감지된다. 한국이 지닌 포텐셜(potential)이 안보외교 분야에서도 터져 나오면서 새 지평을 열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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