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뉴저지 에지워터에 위치한 엑손모빌 주유소. 휘발유를 넣다가 물을 사러 ‘세븐일레븐’에 들어온 남성이 계속해서 투덜거린다. 이곳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20센트. 그는 “이제 기름도 마음껏 못 넣는다”고 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미국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차 없이 살 수 없는 미국인들에게 평균 5달러가 넘는 휘발유 가격은 큰 고통이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 전역의 평균 보통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940달러로 1주 전(5.009달러)보다는 낮았지만 1년 전(3.072달러)과 비교하면 60% 넘게 폭등했다.
2달러대였던 닭다리 6개들이 팩 가격도 어느새 5달러를 웃돈다. 2~3달러 차이지만 상승률로는 100% 수준이다. 우유와 달걀 등도 마찬가지다. 주변 한식당에서는 한 그릇에 갈비 4~5대가 들어 있던 갈비탕에 이제 2대만 나온다. 값은 20달러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가격은 2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미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은 치솟는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만큼 줄고 있다. 전체적인 소비도 그에 비례해 감소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자산 가격 하락을 원하고 있다. 그래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년 대비 최소 20% 넘게 오른 주택 시장에 대해 “지금 사지 말고 기다리는 게 좋다”는 식의 언급을 할 정도다. 급여 인상이 덜 이뤄지기를 바라는 곳도 연준이다. 평상시라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환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급여 인상→물가 상승→임금 인상’의 악순환을 걱정한다.
일반 미국인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다. 월가에서도 경기 침체에 관한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IB)들이 경기 침체 확률 50%를 제시하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마저 “금리가 많이 오르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할 정도다.
물론 경기 침체에 관해서는 반론이 있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야 경기 침체라는 얘기부터 침체 확률은 낮으며 연착륙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3.6%의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상황이 침체일 수는 없다는 논리적 설명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년 대비 8.6%에 달하는, 앞으로 9%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물가가 정상은 아니다. 특히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가 경기 침체라는 말은 정확한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확하게 정해진 게 없는 개념”이라고 본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경제 전반에 걸쳐 상당한 경제활동의 감소가 수개월 이상 지속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2020년 코로나19 록다운(폐쇄) 때의 경기 침체는 골은 깊지만 2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가량 지속됐을 뿐이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두 번 정도 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면서도 강한 노동시장을 근거로 자신은 이를 경기 침체로 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고통의 범위만 놓고 보면 인플레이션이 더 클 수 있다. 사실상 전 국민이 영향을 받는 탓이다. ‘실업은 당사자들만 문제가 되지만 인플레이션은 모든 국민을 화나게 만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에서 실업률보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의 시중금리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물가가 너무 올라 힘들다”는 생각이 충분히 가능하다. 앞서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어드바이저리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이 3분기에 침체에 빠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이 침체 초기 단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힘들다면 그것이 경기 둔화고 침체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개념은 교과서적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일반인들의 삶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지금도 경기 침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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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