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와 소통하는 3인 여성, 2 <당신의 파라다이스> 임재희 작가
-하와이 새 이민 1세로 지금은 한국과 하와이를 오가며 번역가와 소설가로 활동하고, 하와이 초기이민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집필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와이로 이민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가님의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먼저 하와이 한국일보 창립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신문을 구독해 읽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하와이 동포들과 함께 커가며 유익한 신문으로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1985년 처음 하와이에 왔습니다. 20대를 시작한 나이였죠.
결혼을 하면서 다른 보통의 결혼한 여성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학교(하와이대학교 사회복지학과)까지 마치느라 정신 없이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눈을 감았다 뜨면 1년이, 돌아서면 10년이 사라지고 없던 그런 시간이었어요.
‘생활’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 들어가 멈추는 법을 모르는 부속품처럼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문학이 제게 주는 위로가 큰 힘이 되었고 희미해져 가는 저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국 방문 길에도 트렁크 가득 한국 문학서적들을 사 들고 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한국에서 사온 시집들과 소설들을 읽으며 늦게까지 혼자 깨어 있곤 했지요.
그때 제 언어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자로서 생존의 언어와 사유의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된 거죠.
태어나 20년 이상 한국에 살았으니 제 사유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언어는 한국어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국어에 대한 감각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감정이 결핍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마치 유년의 기억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과정을 겪는 노인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처럼 황망했습니다.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과 모국어로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점점 더 강렬해지더군요.
한국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것도 그런 동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창작을 배우며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조금씩 써오던 소설을 그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지난 11년 동안 해왔던 대학(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순천 국립대 문예창작학과, 성신여대 국제교류학부) 강의를 모두 그만두고 창작에 몰두하며 틈틈이 영문소설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이 모티브가 된 폭력과 상실, 치유에 대한 3번째 장편소설이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제 첫 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가 영문으로 미국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곧이어 영상으로 세계 관객들에게 소개될 예정입니다. <4면에 계속>
-첫 소설이 하와이 초기이민자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작품과 작가의 정체성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작가로서 앞으로 작품 세계에서 구현하고 싶은 서사의 방점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작가는 여러 작품을 통해 한 권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픽션이라는 장르 속에서도 작가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존재입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만나고 ‘우리’라는 더 큰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의 정체성과 작품의 정체성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늘 생각합니다. 세상에 많은 작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여러 작가들이 쏟아낸 다양한 글들이 독자들에게 더 풍요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제 첫 소설이 하와이 초기 한인이민사를 배경으로 썼던 이유도 제가 이민자로 살았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100여 년 전 그들의 모습 속에서 분명 이민자인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었고, 쓰고 싶었고,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이민 ‘키워드’는 여성, 교회, 독립이었겠지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작가인 저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 가부장제도와 사회적 약자가 겪는 차별에 대한 저항, 더 나아가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떠나 인간 존엄에 대한 이해와 가치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 안에 담긴 ‘나’를 만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임재희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랄까요? 그리고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이야기는? 소설 쓰는 삶은 제 스스로 선택한 하나의 방식입니다.
누구도 소설 쓰라고 제 등을 떠민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와 떨어져 미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제겐 가장 큰 창작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함께 일상을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그런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작은 결심들이 저를 책상 앞으로 다가가게 만듭니다.
그리고 소설 쓰는 일만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점도 창작 동력의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장편을 더 쓰고 싶습니다.
1970년 이후에 이민 온 여성 3대에 대한 얘기와, 기지촌 여성들 가운데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과 그들 가족의 상처와 화해, 그리고 다른 나라에 정착한 초기한인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구상 중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위의 것들에 대해 더 조사하고 공부해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싶습니다. 문예지에 틈틈이 단편 소설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쓴 자신의 소설이나 읽은 글 가운데 가장 명문장이라고 감탄했거나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있는지요?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제가 어줍은 소설이라도 쓰고 있는 것은 선배작가들이 남긴 작품들 속에 꿈틀대던 빛나는 문장들 덕분입니다.
수없이 밑줄을 긋던 그런 순간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의식 속에 오래 남는 문장들이 몇 있습니다.
문장 자체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새기게 됩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한 문장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평범하지만 통찰력 있는 이 문장은 제게 소설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가끔 곱씹어보곤 합니다.
창작할 때마다 마음에 새기는 괴테의 문장도 하나 있습니다.
“문학은 파편들의 파편이다. 일어나고 말해진 것 중 아주 작은 부분만이 쓰여지고, 쓰여진 것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만이 남게 된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쓰는 자와 쓰는 일에 대한 사유, 그리고 삶이 문학보다 구구절절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제가 쓴 소설 중에 기억나는 문장들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 남의 글처럼 무심해집니다.
그 전까지 깊이 고뇌했던 것에 지쳐서도 그렇고, 또 잊어버려야 새 작품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파라다이스>에 썼던 작가의 말 가운데 한 부분이 가끔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낙원으로 가는 긴 여정을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다. 낙원이 삶의 터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또 새로운 낙원을 꿈꾸게 된다.”
‘낙원’이나 ‘파라다이스’ 대신, ‘행복’이나 ‘희망’이란 단어를 넣어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활동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지요?계획 중인 작품들을 다 쓰면, 한국문학을 영어권 나라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나를 소설가로 키워준 한국문학에 대한 제 작은 애정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대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문학 강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삶을 함께 나눌 수 있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