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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반성문 쓰지 않으려면

2022-06-24 (금)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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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 콰시 콰텡 영국 경제·에너지부 장관이 중국 기업의 자국 반도체사 인수에 대한 ‘국가 안보 평가’를 지시했다. 중국 측에는 해당 계약이 국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면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앞서 지난해 7월 중국 윙텍테크놀로지는 영국 최대의 마이크로칩 공장인 뉴포트웨이퍼팹을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1년 가까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던 영국 정부가 뒤늦게 움직인 이면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 측이 뉴포트웨이퍼팹을 중국에 팔지 않으면 전기자동차용 칩을 만드는 허브가 될 수 있다며 영국 정부를 설득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적대 국가에 투자할 때 연방 정부의 허가를 받게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이 닿는다. 7월 중 표결에 부쳐질 이 법은 미국 기업이 ‘우려 국가’에 반도체 등 특정 기술과 관련한 투자를 할 경우 연방 정부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적법 여부를 검토해 허가를 결정하는 내용이다. 해외투자에 관한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핵심 공급망 보호를 위한 입법이다. 법이 통과되면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반도체·배터리의 ‘그린필드 투자’, 즉 생산 시설이나 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투자를 할 수 없다.

미국의 공세에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진행형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들에 금융 지원까지 해주며 칩 생산 장비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생산 장비 주문 규모가 전년보다 58% 증가한 296억 달러에 달했다. 2년 연속(2020~2021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 생산 장비를 사들인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는 최근 기사에서 “중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성장은 세계가 중국의 공급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도 위협적이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가 이달 9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세계 10대 반도체 설계 기업 순위에서 중국 웨이얼반도체가 처음으로 9위에 올랐다. 퀄컴·엔비디아 등 쟁쟁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열에 중국 업체가 합류한 것이다. 중국이 생산하는 반도체가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 몇 세대 뒤처져있으니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내 일각의 안이한 시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면서 ‘메모리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앞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최근 공개한 ‘2022년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기업’ 보고서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시총은 3420억 달러(약438조 원)로 22위였다. 1년 전 15위에서 7계단이나 내려갔다. 반면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는 올해 ‘톱10’에 새로 진입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약세 흐름을 이어가며 ‘5만 전자’로 내려앉았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수요가 위축돼 하반기에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언급한 것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으로 읽힌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전쟁의 급박함을 인식하고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인재 양성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완화 등으로 기업들의 초격차 기술 무장을 돕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를 뚝심 있고 속도감 있게 밀고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 세계 반도체 업계를 호령하다가 변방으로 밀려난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이 주저할 때 한국은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는 일본의 반성문과 같은 것을 훗날 우리가 쓸 수도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기업·국회가 지혜를 모아 실천해야 할 때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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