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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이 함께 사는 법

2022-06-23 (목)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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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가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서 열연해 제75회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한국 남자배우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 감독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는데 그 여주인공은 탕웨이라는 걸출한 중국 배우였다. 이처럼 높은 인문 정신과 문화의 교류는 국경과 국적의 울타리를 쉽게 넘나든다. 사실 서울과 베이징, 그리고 도쿄의 젊은이들도 공동의 청년 문화를 실시간으로 소비하면서 그들의 ‘해방일지’를 함께 쓰고 있고 한중일 지식 공동체도 협력과 연대를 위해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원래 서로 가깝게 생각하고 지낸다는 좋은 의미의 친한·친중·친일이라는 말은 여전히 금기어이고 국수주의에 포획된 세력들은 정치적 갈등이 나타날 때마다 부정적인 기억을 호명하면서 확증편향을 강화해왔다. 더구나 국내 정치의 필요 때문에 이러한 적대적 공존 구도를 활용하거나 손쉬운 ‘낙인 찍기’로 협력의 공간을 닫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중일이 서로 다른 생각과 시선을 수용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세계 인구의 20%, 세계 교역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3국 간의 대화는 양자 대화보다 더 많은 복잡한 변수가 있지만 복수 국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최대공약수를 찾는 훈련을 하고 이를 습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0년 한중일 정상이 3국 협력 메커니즘 확대와 제도화에 합의하고 이듬해 협력사무국(TCS)을 서울에 설립한 것은 중요한 이정표였다.

지난주에 협력사무국이 주최한 ‘미래지향적 3국 협력: 지속적 평화, 공동번영, 공통 문화’를 주제로 2022년 한중일 협력 국제포럼이 열렸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중일 협력 공간이 위축됐고 언제 끝날지 모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에너지·광물자원 등의 공급망 교란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이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일부 참여자 사이에 날 선 공방이 있었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협력을 통한 상호의존은 심화됐으나 정치 안보 협력은 지체되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교류, 특히 미래 세대인 청년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식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회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사실 시야를 멀리 두면 과거 냉전기와 달리 미중 관계의 파국과 완전한 공급망 분리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세계경제는 무기화된 상호의존 속에서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 반세계화에 쉽게 올라타기보다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평화를 얻었는지, 역내 경제협력의 작은 진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는지, 혐오와 갈등 속에서도 이를 완화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지식 공동체가 지혜를 공유했는지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다국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세계인들은 세계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지역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한중일 협력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 중일 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또한 한중일을 포함한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올해 2월에 정식으로 발효됐다. 이것은 포괄적이며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논의를 위한 물꼬를 틀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한중일은 2019년 이후 정치적 이유와 코로나19로 끊어진 제9차 한중일 정상회담을 재개하고 이를 정례화해야 하며 이 플랫폼을 통해 녹색 공급망, 지속 가능한 발전, 미래 세대가 주체가 되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만나야 소통 부재에서 오는 오판을 막을 수 있고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삿짐을 싸는 인식도 바로잡을 수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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