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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가 대중교통의 도시가 될 날은

2022-06-23 (목) 김종하 편집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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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이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없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관문은 김포공항이었다. 김포는 필자를 포함해 90년대까지 미국 이민 또는 유학길에 올랐던 한인들에게 그 장도의 출발지였다. 하지만 팽창하는 항공 수요에 비해서는 낡고 좁았다. 이러한 김포공항의 포화를 예상해 새로운 국제공항을 건설하자는 계획이 시작된 건 이미 오래 전인 1981년. 여러 후보지들의 타당성 검토를 거친 끝에 인천 앞 영종도가 신공항 부지로 최종 낙점된 게 1990년이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당시에는 위치 선정 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환경보호 단체의 반발 등 논란도 많았지만, 우여곡절 공사 과정을 거쳐 인천공항이 공식 개항한 게 2001년 3월 말이니 첫 계획에서 실현까지 20여년이 걸린 셈이다. 흔히 영종도로만 알려져 있는 인천공항 부지는 사실 가장 큰 영종도와 이에 인접한 3개의 서로 다른 섬들을 간척으로 이어서 조성한 것이라고 하니 당시 계획 입안자들은 상당히 담대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지금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왠지 뿌듯할 만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항이 되었음은 모두가 다 아는 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공기를 이용할 때면 LAX로 불리는 LA 국제공항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미국 내 다른 주요 대도시 공항들과 비교해도 그렇거니와, 특히 인천공항에 비하면 미 서부의 최대 관문이라는 LA를 대표하는 공항치고는 시설의 규모나 편의성 면에서 훨씬 떨어졌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LAX가 미래 LA 교통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LA 시정부와 공항공사가 140억 달러를 투입해 진행하고 있는 대대적 공항 현대화 프로젝트가 그 중심에 있다. 그 1단계와 2단계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면서 탐 브래들리 국제선 청사 확장과 국내선 터미널들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돼 요즘은 그리 LAX가 이전과 같이 낙후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기에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건설이 진행 중인, ‘피플 무버’로 불리는 공항 무인열차 시스템이 개통되면 LAX는 남가주 주민들의 공항 이용 경험을 전혀 새롭게 바꿔놓게 될 것이다. 뉴욕 JFK를 비롯해 웬만한 대도시 공항들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갖춰져 있는 공항 무인열차 시스템이 LA에는 비록 뒤늦게 생기는 것이지만, 이 프로젝트가 LAX에 중요한 이유는 바로 ‘커넥션’에 있다.

‘대중교통망과의 연결’이 바로 이 피플 무버가 LAX에 가져올 혁신이다. LAX 무인열차는 역시 현재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메트로 전철 크랜셔-LAX 라인과 이어져, 이 두 노선이 완공되면 마침내 LAX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터미널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공항으로 거듭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LA 카운티 메트로폴리탄 교통 당국의 ‘2020 장기교통플랜’과 맞닿아 있다. 지난 2020년 공식 입안된 이 플랜은 2050년까지 30년에 걸쳐 총 4,000억 달러를 투입, LA와 인근 지역들을 연결하는 총 99마일의 전철망을 깐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된다면, LA도 차에 의존하지 않고 서울처럼 전철만으로 공항에 갈 수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LAX 공항은 대중교통망 연결의 효과를 입증하는 중요한 거점인 것이다.

LA 대중교통의 미래는 오는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와도 맞물려 있다. 1932년과 1984년에 이어 3번째로 올림픽을 여는 LA는 6년 뒤 다시 전 세계에서 방문할 올림픽 손님들을 맞이하게 된다. 1984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며 LA는 새로운 도약을 이뤘다. 오는 2028년 올림픽은 ‘프리웨이’로 상징되는 자동차 문화의 본거지인 LA에 ‘대중교통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도약을 이루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실 2028년 올림픽에 2년 앞서서 2026년 월드컵 경기들도 LA에서 치러지게 되니,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몰려올 대규모 관중들의 매끄러운 이동을 이뤄내기 위한 대중교통망 정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여기에서 또 한 곳의 중요한 거점이 LAX 공항 인근의 ‘소파이 스테디엄’이다. 소파이 스테디엄에서는 4년 뒤 월드컵 축구 경기들과 2028년 LA 하계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게 되니 말이다. 이 소파이 스테디엄에서 작년 11월 열린 방탄소년단(BTS) 공연과 올해 2월 열린 수퍼보울 경기 당시 그 일대는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들로 난리가 났었다. 월드컵과 올림픽 때도 이같은 교통대란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전철과 소파이 스테디엄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피플 무버’ 라인 건설안이다.

모쪼록 이같은 계획들이 모두 실행돼 언젠가는 LA도 촘촘하고 편리한 전철망과 버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중교통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이 비록 요원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4년 뒤 2026년 월드컵에서라도, 대한민국 경기가 LA에 배정돼 차를 놓고 전철과 피플 무버를 타고 소파이 스테디엄까지 가서 ‘붉은악마’ 응원을 펼치고 싶다면 지나친 바램일까?

<김종하 편집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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