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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왜 저러지…

2022-06-20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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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수출이 계속 내리막길이다. 경제성장률도 뚝 떨어졌다. 위안화 절하와 자본유출이 이어지는 등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가입 후 최악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직전 같다.’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여기저기서 나오는 진단이다.

피크에 올랐다가 급격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할까. ‘세계 넘버 1이 눈앞에 있다’- 그러니까 ‘중국몽’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 세계 패권국 진입 문턱에서 주저앉으면서 중국몽은 백일몽이 되고 만 형국이다. 그 티핑 포인트는 그러면 어디서 찾아지나.


“1958년 7월 무렵. 당 최고위 지도자들은 대약진운동이 이미 실패임을 알고 있었다. 마오쩌둥과 어릴 적부터 친구인 펑더화이 원수는 루산회의에서 대기근의 참상을 전하면서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마오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였다. 펑더화이는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지위에서 해임된다.”

“농촌지역에서는 만연한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은 2년 동안 계속 곡물을 소련에 수출했다. 1962년 1월에야 정책은 전환됐다.”

수천만(최소 2,000만에서~6,000만까지 추정)의 인명피해를 낸 대약진운동, 중국공산당 최악의 정책과 관련한 아시아타임스의 보도다. 이 어처구니없는 최악의 대참사가 벌어진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본토에서 비슷한 스토리라인이 전개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로 코비드’(칭링^淸零)정책 강행이 바로 그것이다.

‘단 한 명의 코로나 감염자도 허용하지 않겠다’- 이 중국식 방역은 한 때 베이징의 자랑이었다. 최초로 코로나 19이 발생한 우한을 70일 이상 봉쇄한 끝에 코로나청정지역으로 만들었다.

그 타이밍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코로나 감염이 폭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정황에서 ‘제로 코비드’정책은 시진핑의 위대한 치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 정치 시스템이 서방제도보다 우월하다는 체제선전 근거로 사용됐다.

2년이 지난 후 상황은 일변했다.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됐다. 집단면역도 형성됐다. 바이러스 도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감염속도는 더 빠르다. 그러나 사망률은 낮은 오미크론 변이로. 코비드는 더 이상 중요 이슈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상황이다. 중국은 다르다. 효과적인 백신개발에 실패했다. 집단면역이 형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60세 이상 고령층의 백신접종률은 극히 낮다. 방역을 느슨히 할 경우 감염되기가 더 쉽고 또 치사율도 더 높다.


베이징은 무지막지 할 정도로 ‘제로 코비드’ 정책을 밀어붙였다. 1명의 환자가 발생하면 20만의 주민을 봉쇄하는 식으로. 눈치를 보던 지방정부들은 ‘당 중앙의 심기’를 헤아려 더 가혹한 봉쇄조치 경쟁에 나섰다.

중국 개혁개방 승리의 상징으로 꼽혀온 선전이 봉쇄됐다. 상하이도 봉쇄됐다. 항저우, 쑤저우, 하얼빈. 마침내 수도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24개가 넘는 대도시가 봉쇄됐다. 그 와중에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봉쇄에 따른 의료대란으로)사태가 속출했다.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수출, 소비, 투자지표가 모두 뒷걸음 친 것. 이와 동시에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날로 고립돼 갔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사회의 반중기류는 높아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반중정서는 더욱 확산, 공급망 디커플링이 가속화되면서 ‘제로 코비드’ 정책은 중국의 최대 딜레마이자 리스크가 되고 만 것이다.

경제도 경제지만 밑바닥 민심도 심상치 않다. 그토록 당 지시를 잘 따르던 상하이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는 베이징의 대학가로도 번졌다. 무관용 ‘코비드 제로’정책에 피로가 쌓이면서 분노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

이제 베이징은 그 ‘코비드 제로’정책을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여기저기서 던져지는 질문이다. ‘아니, 시진핑은 계속 밀고나갈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1인 독재 체제에서 모든 성공은 시진핑 덕분으로 미화, 칭송된다. ‘제로 코비드’ 정책이 바로 그렇다. 시진핑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으로 단순한 방역정책을 넘어 이데올로기로 승화됐다.

당 중앙, 영도자가 과오를 시인, 중도에서 정책을 변경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시진핑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3기연임을 앞둔 시점에서는 더 더욱이. 그래서 제로 코비드 포기는 불가, 불가다.

무엇을 말하나. 공산당 최우선, 더 나가 당 지도자는 ‘무오류의 존재’라는 레닌주의 가치 시스템이 작동하는 체제가 시진핑의 중국으로 대약진운동이 대참사로 끝난 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체제의 속성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문득 관심이 가는 대목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좌파 교수가 쓴 ‘짱깨주의 탄생’이란 책을 추천하고 나선 사실이다. 노골적으로 중국을 옹호하면서 중국혐오를 부추기는 짱개주의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가 만든 신냉전 기획담론이라는 것이 그 골자인 모양이다.

왜 문재인은 뜬금없이 이런 책을 추천하고 나섰나.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와 같은 대국에 비교하면서 중국몽과 함께 할 것이란 변방국의 충성맹세가 새 정부 들어 모두 허사가 된 허탈감에서인가, 아니면….

짱개주의는 더도 덜도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고 힘만 믿고 우쭐대는 공산당 통치의 중국, 그 자업자득의 산물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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