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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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걷다

2022-06-18 (토)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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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길어진 요즘 걷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 천지사방 환해도 깨어있는 것은 몇 안 되는 이른 아침, 아직 남아있는 밤의 찬 기운이 얼굴에 닿아 상쾌함을 더해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기분 좋게 서늘한 기운이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길게 내쉬는 숨에 밤새 쌓인 나쁜 기운을 다 몰고 나온다. 어쩐지 오늘은 특별한 하루가 될 듯하여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동네 숲길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 옆으로 키가 큰 나무들이 서로서로 자리를 양보하며 서있는 것이 보인다. 너끈히 아름드리 될 듯한 큰 나무가 동네 반장처럼 서있다. 밑동에는 작은 구멍이 나있다. 드나듦이 잦은 지 턱이 많이 닳아있다. 다람쥐나 그 비슷한 작은 동물들이 그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나보다. 한구석을 넉넉히 내준 그 나무는 흡족한 얼굴을 하고 서있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드리운 그늘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엄마 품속에 안긴 듯 행복한 얼굴로 앉아있다. 높은 가지에서 새들이 지저귄다. 아침을 깨우는 소리. 하루를 부르는 소리.
걸으면서 계속 나무들을 바라본다.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구부러진 나무.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잘 어우러져있다. 어떤 모양이든 아름답다. 남을 탐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 자족하는 나무들은 당당히 서는 것으로 서로의 다름을 빛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비바람에 꺾여 쓰러진 나무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서로서로 기대고 사는 나무들의 세상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다. 행복한 기운이 내 마음에도 스며든다.


조금 이상한 모양의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변의 다른 나무보다 키가 월등하게 큰 데 두개의 가지를 위에 하나 아래에 하나 내고 있다. 그런데 그 아래 밑동에서 나온 가지에는 매그놀리아의 넓적한 이파리가 크게 달려있다. 어떻게 한 나무에서 두 가지 다른 나뭇잎이 달릴 수 있나? 누가 접목이라도 한 것일까? 신기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그놀리아 나무가 그 나무 뒤에 바짝 붙어서 자라고 있었다. 그 정도로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땅속의 뿌리는 이미 하나가 되어 엉겨있을 것 같다. 온몸은 덩굴 식물이 타고 오르게 내어주고 뒷등에는 다른 나무를 달고 있는 그 나무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편안하게 웃는 듯하다. 다 내어준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깊은 평강이다. 그 앞에서 문득 욕심이 가득한 우리들의 세상이 부끄럽게 떠올랐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제로섬 법칙이 있다. 여러 개체로 구성된 집단에서 발생하는 개개의 이득과 손실을 합하면 0이 된다는 수학적 개념이다. 제로섬 법칙이 적용되는 게임에는 무승부가 없다. 상대방의 점수를 빼앗아 와야 승리한다는 특성상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기적이 되어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패자가 되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이 정당하게 인정된다.

이런 제로섬 법칙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우리들이 사는 지구에는 물질이 제한되어 있다. 그 물질을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사용해야한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더 많이 가졌다면, 그만큼 적게 가진 사람이 반드시 지구안에 있다는 논리이다. 자유경쟁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욕심이 너무 앞서 갈 때는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덤으로 가진 것으로 인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움켜쥐는 손을 조금은 쉽게 펼 수 있다. 일상에서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게 된다. 오늘 내가 나눈 작은 것으로 우리는 미래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나무들의 삶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무와 걸으며 그들의 당당함과, 함께 서있음과, 서로 빛내줌을 배운다. ‘새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내딛는 발걸음에 새 힘이 실린다.

<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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