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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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그냥 들어 주는 일

2022-06-17 (금) 오제은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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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호소한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의 핵심은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듣는 것,’ ‘그냥 들어 주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다. 특별히,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보여주는 따뜻한 관심이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잘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인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의 힘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참 안됐군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아파요’라고, 단순히 건네는 말 한마디의 힘이 사실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상담사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상담했던 어떤 분은 그 분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도 다하지 못한 채 도리어 상대방의 얘기만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불평했다. 결국 그 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실망감에 고통을 받아야했다. 그로 인해 그 분은 말수가 적어지고 점점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마음이 얼어붙게 되었다.

들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 듣는 사람은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즉 듣는 것의 초점은 말하는 사람이다. 잘 들어주게 되면 상대방은 자신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고통 그 자체보다도 그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는 데 있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험을 제대로 갖지 못한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고통이 격감되었다고 고백한다. 비록 우리가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과 아픔을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누느냐에 따라서 고통의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으며,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저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눈물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종종 대하게 된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티슈를 건네주는 일조차도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오는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는, 나는 그저 듣는 것에만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울고 싶을 만큼 다 울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거기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따뜻한 사랑으로 침묵하며 그냥 들어주는 일은 청산유수의 말보다도 훨씬 치유하는 힘이 클 뿐만 아니라 우리 서로를 깊이 연결해준다.

<오제은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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