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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싶다’

2022-06-14 (화)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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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첫째 주말 동안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 들어 동부, 서부, 중부를 가리지 않고 총기 폭력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큰소리만 나도 총기난사가 아닌가 긴장하고 있다.

심각한 총기폭력으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올 들어 최고 규모의 캐러밴(Caravan)이 미국을 향해 북상 중이다. 캐러밴은 미국으로 이동하는 중미국가 이민자 행렬을 말하는데 대상(隊商)의 의미를 갖고 있다. 대상은 낙타나 말 등에 짐을 싣고 다니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의 집단으로 도적 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몰려서 다녔다. 자국과 타국 땅을 가로지르고 국경을 넘으면서 도둑, 강도, 살인, 납치 등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자 무리를 이룬 캐러밴, 함께 가면 밀입국 브로커비 수만 달러를 주지 않아도 된다.

2000년 중반~2010년 초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캐러밴은 왜 무작정 미국으로 올까. 생명의 위협과 가난 때문이다. 4차 혁명의 발달과 미국의 셰일가스 채굴로 미국에 자원을 팔던 중남미 국가의 경제가 초토화되었다. 중국 공산품 생산으로 인해 중남미 국가 생산도 타격을 입었다. 부패와 결탁한 독재 정부, 반군과 갱단, 천재지변은 극도의 가난과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


이번에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 타파굴라에서 출발한 캐러밴은 캘리포니아주 LA에서 8일~10일 열린 미주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각국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한다. 이 회의는 미주대륙 35개국이 3~4년에 한 번씩 모인다. 미국은 개최 주도국인데 반미국가인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3국을 배제했고 이에 반발한 멕시코 대통령도 불참했다. 그러니 이민 협력 문제나 이민 해당국가 경제적 여건 개선 등 협의점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 캐러밴은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국민들로 수천~1만5,000명이 모였다. 유모차를 밀고 아기를 안고 국기를 두르고 대형십자가를 진 이도 있다. 고속도로 한쪽이 인파에 점령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바람은 오로지 ‘미국에 살고 싶다’이다.

배낭 하나 메고 뚜벅뚜벅 걸어서 3,000~4,000 킬로미터를 하루 12시간씩 45일간 걷고 걸어 멕시코를 거슬러 올라가 멕시코시티를 거쳐 미국과의 국경에 달한다. 국경 장벽 앞에서 미 이민세관 단속국에 난민 신청서를 내는데도 6개월이 걸린다. 국경까지 가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캐러밴의 목표이다. 하루 100여명 정도 망명신청을 받긴 하나 심사통과가 어렵다.

그러니 다리가 아닌 강으로 뗏목을 타고 가다가, 국경수비대 발포로 죽기도 하고 밀입국 트럭 안에서 질식사하기도 한다. 지난 2~3년간 캐러밴의 북상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이들은 계속 온다. 조국이 잘 살게 되면 이들은 미국으로 오지 않는다. 요원한 일이지만 외국 관세 인하, 투자 증대는 물론 교육 및 정착을 돕는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왔다고 하자. 미국의 여러 사회적 문제에 건물 청소, 식당 주방, 건설 현장, 마트나 농장 등 험한 일에 투입되어 값싼 노동력을 판다. 최근 3여년 코로나19로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일터로 갔었다. 현재는 포스트 팬데믹을 맞아 식당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인력난이 극심하다.

이민 초창기시절 많은 한인들도 서류미비자였지만 성실하게 일하면서 합법적 신분을 얻었다. 수십년간 일해 열심히 텍스 보고하여 메디케어를 받는 중산층 중에는 미국 온 지 얼마 안 된 극빈층 이민자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완전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허탈해진다고도 한다.

10리가 약 4킬로미터, 4,000킬로미터는 약 1만 리이다. 꿈 찾아 일만 리를 걷는 캐러밴은 우리에게 약일까, 독일까.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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