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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위기의 푸틴의 러시아

2022-06-1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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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은 어떤 종말을 맞게 될까.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승리로 굳어지면서 줄곧 던져져온 질문이다. 동시에 나돈 것이 푸틴의 건강 이상설이다. ‘암에 걸려 길어야 2~3년, 시한부 생명’이란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게 그런데 단순한 ‘설’이 아닌 모양이다. 미국의 정보고위당국자들이 푸틴이 지난 4월 진행성 암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서다. 이 정보 당국자들은 또한 지난 3월 푸틴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도 확인했다.


푸틴은 그러면 머지않아 사망할 것인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크렘린을 둘러싼 러시아의 엘리트들이 푸틴이 치명적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틴 러시아는 1인 독재의 파시스트체제다. 히틀러 나치체제와 같은. 푸틴이 모든 권력의 중추인 그런 체제다. 그런데 권력 중추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럴 경우 시간문제이지 쿠데타에,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다수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여기서 질문은 한 걸음 더 나가 이런 식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 러시아는 장차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가’로.

그 답의 한 단초는 ‘…스탄(Stans)'으로 불리는 과거 소련제국에 종속됐던 나라들의 움직임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2022년 1월 6일 러시아 공수부대가 카자흐스탄에 투입됐다. 대대적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카십조마르트 토가예프 대통령은 구 소련권 6개국이 결성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SOS를 쳤다. 그러자 푸틴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공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카자흐스탄이 요즘 터키에 바짝 다가가고 있다. 구 소련 해체 후 독립을 했지만 카자흐스탄은 사실상 러시아의 위성국가나 다름없다. 게다가 토가예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푸틴 러시아에게 구명지은(求命之恩)을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카자흐스탄뿐이 아니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중립을 표방하는 등 줄타기행보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 러시아의 정치, 군사, 경제적 약점이 드러나자 중앙아시아의 ‘스탄’들은 궤도이탈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러시아연방은 190개 민족에, 85개 연방주체(공화국, 자치주, 자치구 등)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수 민족계 연방공화국들은 거의 대부분이 강제로 편입됐다. 말하자면 피압박민족으로 문화전통과 정체성이 러시아와 다르다. 모스크바가 흔들리면서 이 러시아내의 광대한 소수민족 지역에서도 분리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와 함께 러시아의 군사적 역량과 경제력은 중차대한 손실을 입었다. 국제적 위상도 말이 아니게 됐다. 그 결과 러시아는 수에즈운하 침공 불발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겪었던 제국 해체의 길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는 거다.

1956년 무렵 2차 대전 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외관상 여전히 강대한 제국으로 보였다. 이 두 나라는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바로 이집트 침공에 나섰다. 그 계획은 그러나 ‘진짜 수퍼 파워’ 미국과 러시아의 경고로 무산됐다. 미국은 경제제재, 소련은 군사적 위협을 하고 나서자 그만 굴복하고 만 것.

그 여파로 런던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대영제국의 심장부가 흔들리자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 요구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사이프러스, 몰타 등이 바로 독립을 선언했고 1967년께에는 20여개 이상의 영국의 식민지들이 독립국가가 됐다.

프랑스는 이미 이보다 2년 전 디엔 비에 푸 전투에서 호지명의 월맹군에 대패, 항복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다가 1958년에는 알제리에서 쿠데타가 발생, 뒤따른 정치적 소요와 함께 제 4공화국은 무너지고 프랑스제국은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이보다 더 험난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전망이다. 러시아제국의 심장부 모스크바가 약해진다. 그러자 거대 러시아연방의 주체인 각 소수민족 공화국, 자치주 등지에서 분리 독립운동의 불길이 번진 것은 사실 한 두 번이 아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생하자 7개 연방주체 공화국이 떨어져 나가 독립을 선언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몰도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의 5개 ‘스탄’과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등 모두 14개 공화국이 분리해 나갔다.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에 따른 후유증에다가 크렘린 권력 공백 상황이 겹쳐질 때 러시아는 자칫 소련해체 시와 버금가는 분리·독립 러시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체첸공화국 등 남부지역의 회교 공화국들은 물론, 극동지역에서만 투바공화국, 사하공화국, 축치공화국 등 최소 5~6개의 연방주체 공화국들이 분리, 독립하는 사태가 점쳐지고 있다.

경제는 계속 악화된다. 그런 정황에서 이 많은 자치주와 공화국들의 이해관계는 모스크바와 계속 상충된다. 푸틴 러시아는 문화전통이 다른 각 소수민족 공화국. 자치구 등을 러시아연방에 묶어둘 통합의 이데올로기 제공에 실패했다. 때문에 그 개연성은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거대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있는 권위주의 세력 붕괴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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